<부작위에 의한 방조>
류화진
[대상판례]
대법원 1997.3.14. 선고, 96도1639판결[그랜드백화점 사건]
[사실관계]
피고인은 그랜드 백화점 잡화부 소속 직원으로 잡화매장 관리업무를 담당하면서 공동피고인 홍○봉이 운영하는 잡화매장에서 원심 판시 가짜 캘빈클라인, 세린느, 디케이앤와이, 게스 상표가 새겨진 혁대를 판매하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제지하거나, 상급자에게 보고하여 판매를 금지하도록 조치를 취하지 아니함으로써, 공동피고인 홍○봉이 가짜 상표가 새겨진 위 상품을 고객들에게 계속 판매하도록 방치하였다.
[판결요지]
1. 형법상 방조행위는 정범의 실행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직접, 간접의 모든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작위에 의한 경우뿐만 아니라 부작위에 의하여도 성립된다.
2. 형법상 부작위범이 인정되기 위하여는 형법이 금지하고 있는 법익침해의 결과발생을 방지할 법적인 작위의무를 지고 있는 자가 그 의무를 이행함으로써 결과발생을 쉽게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의 발생을 용인하고 이를 방관한 채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경우에, 그 부작위가 작위에 의한 법익침해와 동등한 형법적 가치가 있는 것이어서 그 범죄의 실행행위로 평가될 만한 것이라면, 작위에 의한 실행행위와 동일하게 부작위범으로 처벌할 수 있다.
3. 백화점에서 바이어를 보조하여 특정매장에 관한 상품관리 및 고객들의 불만사항 확인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은 자신이 관리하는 특정매장의 점포에 가짜 상표가 새겨진 상품이 진열·판매되고 있는 사실을 발견하였다면 고객들이 이를 구매하도록 방치하여서는 아니 되고 점주나 그 종업원에게 즉시 그 시정을 요구하고 바이어 등 상급자에게 보고하여 이를 시정하도록 할 근로계약상·조리상의 의무가 있다고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을 알고서도 점주 등에게 시정조치를 요구하거나 상급자에게 이를 보고하지 아니함으로써 점주로 하여금 가짜상표가 새겨진 상품들을 고객들에게 계속 판매하도록 방치한 것은 작위에 의하여 점주의 상표법위반 및 부정경쟁방지법위반 행위의 실행을 용이하게 하는 경우와 동등한 형법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백화점 직원인 피고인은 부작위에 의하여 공동피고인인 점주의 상표법위반 및 부정경쟁방지법위반 행위를 방조하였다고 인정할 수 있다.
[참조조문]
형법 제32조 第32條 (從犯)
①他人의 犯罪를 幇助한 者는 從犯으로 處罰한다.
②從犯의 刑은 正犯의 刑보다 減輕한다.
, 상표법 제93조 第93條 (侵害罪) 商標權 및 專用使用權의 침해행위를 한 者는 5年이하의 懲役 또는 5千萬원이하의 罰金에 處한다. <改正 97·8·22>
, 부정경쟁방지법 不正競爭防止및營業秘密保護에관한法律
제2조 제1호, 第2條 (定義) 이 法에서 사용되는 用語의 定義는 다음과 같다. <改正 91·12·31>
1. "不正競爭行爲"라 함은 그 目的의 여하를 불문하고 다음 각목의 1에 해당하는 행위를 말한다.
가. 國內에 널리 認識된 他人의 姓名·商號·商標·商品의 容器·包裝 기타 他人의 商品임을 표시한 標識와 동일 또는 유사한 것을 사용하거나 이러한 것을 사용한 商品을 販賣·頒布 또는 輸入·輸出하여 他人의 商品과 混同을 일으키게 하는 행위
나. 國內에 널리 認識된 他人의 姓名·商號·標章 기타 他人의 營業임을 표시하는 標識와 동일 또는 유사한 것을 사용하여 他人의 營業上의 施設 또는 活動과 混同을 일으키게 하는 행위
다. 商品이나 그 廣告에 의하여 또는 公衆이 알 수 있는 방법으로 거래상의 書類 또는 通信에 허위의 原産地의 標識를 하거나 또는 이러한 標識를 한 商品을 販賣·頒布 또는 輸入·輸出하여 原産地의 誤認을 일으키게 하는 행위
라. 商品이나 그 廣告에 의하여 또는 公衆이 알 수 있는 방법으로 거래상의 書類 또는 通信에 그 商品이 生産·製造 또는 加工된 地域 이외의 곳에서 生産 또는 加工된 듯이 誤認을 일으키게 하는 標識를 하거나 또는 이러한 標識를 한 商品을 販賣·頒布 또는 輸入·輸出하는 행위
마. 他人의 商品을 詐稱하거나 商品 또는 그 廣告에 商品의 品質·내용·製 造方法·用途 또는 數量의 誤認을 일으키게 하는 宣傳 또는 標識를 하거나 이러한 방법이나 標識로써 商品을 販賣·頒布 또는 輸入·輸出하는 행위
제18조 제1항 제1호 第18條 (罰則)
①다음 各號의 1에 해당하는 者는 7年이하의 懲役 또는 1億원이하의 罰金에 處한다.
1. 企業의 任員 또는 職員으로서 그 企業에 有用한 技術상의 營業秘密을 정당한 이유 없이 外國에서 사용하거나 外國에서 사용될 것임을 알고 第3者에게 누설한 者
[참조판례]
95도2551, 84도1906, 85도1906, 86도198, 95도456, 91도2951
Ⅰ. 문제의 소재
본 판례는 백화점 내 상품판매와 관련하여 백화점 내 관리사원의 방조책임을 인정한 판결로서, 종래 부작위에 의한 방조범의 성립을 광범위하게 인정해 온 대법원의 입장을 확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안은 부진정부작위범의 경우에 공범의 성립 일반과 관련된 것으로서, 구체적으로 ① 부작위범의 경우에 정범과 공범이 어떻게 구별되는가, 그리고 ② 부작위에 의한 종범이 성립하기 위해 어떤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가가 문제된다.
Ⅱ. 부작위범과 공범
1. 부작위범에 대한 공범
부작위에 대하여도 작위에 의한 교사와 방조는 가능하다. 교사는 부작위범에게 구성요건적 상황을 인식하면서 부작위에 나갈 결의를 일으키게 하는 것이고, 방조는 부작위하겠다는 부작위범의 결의를 강화하는 것이다.
다수의 부작위범에게 공통된 의무가 부여되어 있고, 그 의무를 공동으로 이행할 수 있을 대에는 부작위범의 공동정범이 성립한다. 작위범과 부작위범 사이의 공동정범 성립여부에 관해서는 이론상 가능하다는 견해(이재상)와 행위지배설에 의하면 부작위범은 방조범으로 보는 것이 옳다는 견해(Jescheck)가 있다. 부작위범을 도구로 이용한 간접정범도 있을 수 있다. 이재상, 형법총론, 박영사, 1999, 130면.
2. 부작위범에 의한 공범
부작위에 의한 교사는 원칙적으로 성립할 수 없으므로 정범과 공범의 구별에서는 종범의 성립여부만이 문제로 된다고 이해함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A의 범행을 작위로 교사하는 B에 대해 이 교사행위를 막지 않은 B의 보증인 C의 행위는 부작위에 대한 교사라고 하는 견해도 있다(Roxin). 그러나 이처럼 타인의 범죄행위를 방지할 의무는 매우 한정적으로 인정되고 있으며, 더구나 이런 경우 C의 부작위는 작위로 하는 교사화의 동가치성이 인정된다고 할 수 없다. 범의가 없는 자에게 범행을 결의하게 하는 것과 이미 다른 요인으로 인해 범의를 가진 자를 그냥 두는 것은 그 불법이 같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Ⅲ. 작위범에 있어서 정범과 공범의 구별
공범은 정범에 대립되는 개념이므로 공범의 개념을 밝히기 위해서 먼저 정범의 개념을 밝혀야 한다.
1. 정범의 개념
⑴ 제한적 정범개념이론
제한적 정범개념이론은 인과관계론의 원인설에 입각하여,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를 스스로 행한 자만이 정범이고, 구성요건 이외의 행위에 의하여 결과에 조건을 준 자는 정범이 될 수 없다는 견해이다.
그러나 이 견해는 간접정범과 공동정범의 정범성을 인정할 수 없게 되는 결점이 있다. 이재상, 앞의 책, 402면.
⑵ 확장적 정범개념이론
확장적 정범개념이론은 인과관계론의 조건설에 입각하여, 구성요건적 결과의 발생에 조건을 설정한 자는 그것이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인가의 여부를 불문하고 모두 정범이라고 하는 이론이다.
이 견해는 정범의 개념을 지나치게 확대하여 죄형법정주의에 반하고, 형법의 보장적 기능을 침해하여 형법의 태도와도 맞지 않다는 비판이 있다. 이재상, 앞의 책, 403면.
따라서 정범과 공범의 구별기준을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생긴다.
2. 정범과 공범의 구별기준
⑴ 객관설
① 형식적 객관설
형식적 객관설은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를 직접 행한 자가 정범이며, 실행행위 이외의 방법으로 그 조건을 제공한 자가 공범이라고 한다.
이 견해는 간접정범과 집단의 배후에서 실행행위를 조종하는 자를 정범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결함이 있다. 이재상, 앞의 책, 404면.
② 실질적 객관설
행위가담의 위험성 정도에 따라 정범과 공범을 구별하는 견해이다. 이는 어디에 그 기준을 두느냐에 따라 학설이 나뉜다.
㈎ 필연설
필연설은 결과발생에 대하여 필연적 행위를 한 자가 정범이고, 그렇지 아니한 자가 공범이라고 한다. 원인설에 입각해 있다. 이 견해는 간접정범과 교사범을 구별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이재상, 앞의 책, 405면.
㈏ 동시설
행위수행의 시간적 관련을 기준으로 하여, 행위시에 가담한 자가 정범이고, 그 전이나 후에 가담한 자는 공범이라고 하는 견해이다.
그러나 이 견해에 따르면 문서위조현장에서 펜을 빌려준 자는 정범이 되고, 甲과 乙이 丙을 살해하기로 하여 甲이 丙을 범행장소로 유인하고, 乙이 살해한 경우 甲은 종범이 되는 결과가 된다. 또한 이 견해는 간접정범의 정범성을 설명할 수 없다. 이재상, 앞의 책, 40면.
⑵ 주관설
주관설은 조건설을 전제로 하여, 정범과 공범은 모두 결과에 대한 조건을 제공한 점에서 같고 결과에 대한 여러 조건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 없으므로, 정범과 공범의 구별은 주관적 요소에 의하여만 가능하다고 한다.
① 고의설(의사설)
고의설은 정범의사로 행위한 자가 정범이고, 공범의사로 행위한 자가 공범이라고 한다. 여기서 정범의사란 행위를 자기의 범죄로 실현하고자 하는 의사이고, 공범의사란 타인의 범죄로서 행위를 야기하거나 촉진하는 의사를 말한다.
정범의사와 공범의사는 정범과 공범의 개념이 확정되어 있을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이 견해는 순환론에 불과하게 된다.
② 목적설(이익설)
목적설은 자기의 목적 또는 이익을 위하여 행위를 하면 정범이 되고, 타인의 이익 또는 목적을 위하여 행위하면 공범이 된다는 견해이다.
그러나 형법에는 촉탁살인·촉탁낙태는 물론, 제3자를 위한 사기·공갈·배임이 규정되어 있으므로, 이 견해는 형법의 태도와 일치하지 않는다.
⑶ 행위지배설
이는 정범과 공범을 구별하기 위한 기준을 주관적 요소와 객관적 요소의 결합에서 찾는 견해이다. 행위지배설은 사태의 핵심형상을 계획적으로 조종하거나 공동형성하는 행위지배를 통하여 그의 의사에 따라서 구성요건의 실현을 저지하거나 진행하게 할 수 있는 자가 정범이고, 자신의 행위지배에 의하지 않고 행위를 야기하거나 촉진하는 자는 공범이라고 한다. Roxin은 행위지배개념을 유형화하여 구체적 내용을 가지게 하였다.
① 실행지배
모든 구성요건요소를 스스로 유책하게 실천한 직접정범에 있어서 행위지배는 실행지배로 나타난다.
② 의사지배
타인을 도구로 이용하여 범죄를 실행한 간접정범에 있어서는 행위지배가 의사지배의 형태로 나타난다.
③ 기능적 행위지배
2인 이상이 공동하여 죄를 범한 공동정범에 있어서 행위지배는 기능적 행위지배를 의미한다. 즉 공동정범을 각자가 역할분담에 따라 전체계획의 수행에 필요불가결한 부분을 분업에 의하여 공동으로 수행하는 것이며, 이러한 기능적 행위지배에 의하여 공동정범은 각자가 공동의 행위지배를 가진 정범이 된다. 이재상, 앞의 책, 409면.
⑷ 결론
정범과 공범의 구별은 객관적·주관적 표준을 종합한 행위지배이론에 의하여 해결하여야 한다. 따라서 정범이란 객관적 행위가담과 의사관여의 정도에 따라 「그 결과가 목적적으로 조종되거나 행위를 공동형성한 의사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구성요건실현을 지배하거나 공동으로 지배한 자」이고, 공범은 이러한 행위지배없이 타인의 범죄를 야기 또는 촉진한 자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이재상, 앞의 책, 410면.
Ⅳ. 부작위범에 있어서 정범과 공범의 구별
1. 문제의 소재
부작위범은 작위범과는 달리 능동적인 행위가 결여되어 있으므로, 당해 부작위가 범행에 어떤 형태로 기여한 것인가를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부작위범에 있어서 정범과 공범의 구별은 진정부작위범과 부진정부작위범의 경우로 나누어 판단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진정부작위범의 경우는 부작위범에 공범자가 부작위로 참여하는 경우이다. 예컨대 타인의 집에 놀러 갔다가 귀가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는 아들을 데려가지 않고 그대로 부모가 방치하는 경우에는, 부모는 아들의 퇴거불응을 부작위로 방조한 것이 되므로, 부작위에 의한 부작위범에의 참가이다.
부진정부작위범의 경우는 작위범에 공범자가 부작위로 참여하는 경우이다. 예컨대 은행강도들이 은행을 터는 동안에, 경비원이 쉽게 경보를 울려 경찰에 신고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고하지 않아서(이미 은행강도들에게 매수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은행을 터는 것을 도와 준 경우 경비원은 특수강도를 부작위로 방조한 것이 되므로, 부작위에 의한 작위범에의 참가이다.
이러한 경우에 부작위로 참가한 자를 어디까지 정범으로 보고, 어디까지 종범으로 보아야 하는지가 문제된다. 부작위범의 경우에는 당해 사건에 대한 현실적인 지배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작위범에서처럼 행위지배의 여부에 따라서는 정범과 공범을 구별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견해가 접근하고 있다. 신양균, 부작위에 의한 방조, 형사판례연구[6], 박영사, 1998, 140면.
학설의 대립을 살펴보자.
2. 부작위범의 경우 정범과 공범의 구별에 관한 학설
⑴ 주관설
이는 작위범에 있어서 주관설, 특히 고의설에 따른 구별이다. 즉 부작위의 영역에서는 정범과 공범을 객관적 표준에 따라 구별할 수 없다는 전제 하에, 당해 부작위가 정범의 의사에 기인한 것인가 아니면 공범의 의사에 기인한 것인가에 따라 정범과 공범을 구별한다. 독일 판례와 몇몇 독일 학자들의 태도이다.
그러나 고의설 자체가 결함을 가진 견해임은 앞에서도 보았고, 작위범에 대한 구별표준을 부작위범에 그대로 원용하는 것은 작위와 부작위의 존재방식의 차이를 간과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우리 나라에는 지지자가 없다. 신양균, 앞의 책, 141면.
⑵ 정범설
정범설은 보증인이 제3자의 작위불법을 방지하지 않으면 항상 부작위한 정범이 성립한다는 견해이다. 독일의 많은 학자들이 이 견해를 지지하고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부진정부작위범의 경우에 보증인의 지위에서 나타나는 결과방지의무는 정범을 구성하는 표준이므로, 정범의 범행을 방치한 경우에 당해 부작위가 작위에 의한 정범과 동치될 수 있다면 부작위에 의한 정범으로 처벌된다고 한다.
그러나 일정한 범행에 수인이 작위와 부작위의 형태로 관여한 경우에 작위로 관여한 자는 사건의 중심형상으로 간주되지만, 단지 부작위의 형태로 개입한 자는 당해 사건의 주변형상에 불과하므로 정범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비판이 있다. 신양균, 앞의 책, 141면.
⑶ 종범설
종범설은 부작위를 통해 작위범에 참가한 보증인은 늘 종범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한다. 독일의 다수학자들이 취하고 있는 견해이다. 수인에 의한 범행참가의 경우에 정범으로서의 책임은 결과를 직접 야기한 자만이 지게 되고, 당해 결과야기에 개입하지 않은 자는 단지 행위자가 범행에 성공할 기회를 증가시켰다는 의미에서 종범의 책임을 지는 데 불과하다고 본다.
그러나 이 견해에 대해서는 부작위의 경우에 정범과 공범의 구별을 범행기여의 비중에 따라 구별하려는 것은 부당한 전제에 선 것이라는 비판이 행해진다. 즉 작위범에서와 마찬가지로 행위지배라는 표준을 부작위범에 전용하는 것은 부작위범의 특수성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신양균, 앞의 책, 142면.
⑷ 구분설
정범과 공범을 결과방지의무의 태양에 따라 구별하려는 견해이다. 즉 부작위한 자가 보호보증인인 경우에는 정범의 규칙이 적용되고, 감독보증인인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종범의 규칙이 적용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 견해는 보호보증인과 감독보증인의 구별이 항상 명확한 것이 아니라는 결점이 있다.
⑸ 우리 나라의 경우
우리나라의 학설을 보면 작위와 부작위의 형태로 수인이 범행에 참가한 경우에 부작위에 의해 참가한 자는 원칙적으로 종범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인 듯하다(종범설). 즉 부작위범의 경우에는 작위범에서처럼 정범과 방조범의 구별문제는 보통 일어나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작위적 정범의 실행행위를 방지해야 할 부증인적 지위에 있는 자가 부작위로 나아가 그것을 방치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방조범을 뜻할 뿐이라고 한다.
이에 반하여 일부 학설은 정범설의 입장에서, 부작위에 의한 종범의 성립을 인정하면서도, 종범은 정범이 성립하기 위한 구성요건이 부작위에 의한 결과발생방지의무를 넘어서는 추가적인 조건을 규정하고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성립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추가적인 주관적 구성요건표지가 필요한 범죄(예컨대 절도범), 신분범, 자수범 등에서만 부작위에 의한 종범이 가능하고, 기타의 경우에는 정범으로 된다는 것이다.
⑹ 이론적 검토
우리나라와 독일의 다수설인 종범설의 가장 큰 문제는 부진정부작위범의 핵심적 요소라 할 수 있는 보증의무를 수인이 참가한 경우와 단독으로 실행한 경우에 각각 달리 보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단독으로 실행한 경우에는 보증인의 의무를 결과발생방지의무로 이해하면서도, 작위범과 함께 범행에 참가한 경우에는 작위범(정범)의 실행행위를 방지할 의무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부작위에 의한 작위범에의 참가가 정범인가 종범인가는 당해 구성요건과의 관계에서 독자적으로 평가되어야 할 문제이다.
따라서 보증의무가 존재하는 이상 부작위에 의한 범행참가는 원칙적으로 정범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며, 당해 구성요건 자체가 본질적으로 부작위에 의해 실현될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종범의 성립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신양균, 앞의 책, 146면.
Ⅴ. 판례의 동향
작위에 의한 정범에 관여한 부작위범에 대하여 판례는 기본적으로 종범설의 입장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1984.11.27.선고, 84도1906판결: 「형법상 방조는 작위에 의하여 정범의 실행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경우는 물론, 직무상의 의무가 있는 자가 정범의 범죄행위를 인식하면서도 그것을 방지하여야 할 제반조치를 취하지 아니하는 부작위로 인하여 정범의 실행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경우에도 성립된다 할 것이므로 은행지점장이 정범인 부하직원들의 범행을 인식하면서도 그들의 은행에 대한 배임행위를 방치하였다면 배임죄의 방조범이 성립된다」
또한 최근의 판례는 부작위한 자가 보증의무를 가지고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당해 부작위가 작위에 의한 방조와 동가치한 것인 때에 한하여 종범의 성립을 인정함으로써 제한적인 입장을 보이는 듯 하다. 대법원 1996.9.6.선고, 95도2551판결: 「형법상 방조는 작위에 의하여 정범의 실행을 용이하게 하는 경우는 물론, 직무상의 의무가 있는 자가 정범의 범죄행위를 인식하면서도 그것을 방지하여야 할 제반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는 부작위로 인하여 정범의 실행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경우에도 성립된다 할 것인바, 비록 피고인들이 위 김기헌의 횡령범행을 알고 그 범죄행위로 발생한 피해를 최대한으로 줄이기 위하여 노력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노력의 한 수단으로 경매업무의 주무계장인 피고인들이 새로 납입되는 입찰보증금에 대한 보관표를 제때에 제출받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새로 발생되는 입찰보증금의 횡령행위에 대하여서는 아무런 방지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 명백하므로 부작위에 의한 방조죄를 저질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건은 실질적으로 아무런 제한기능을 하지 못한다. 행위정형의 동가치성이란 보증인지위의 존재로 충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판례의 입장은 종범설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Ⅵ. 결론
타인의 범죄행위를 방치한 경우에 결과발생을 방지할 의무가 있는 자의 부작위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해서 여러 학설과 판례의 경향을 살펴보았다.
부작위범의 경우에는 작위범의 경우와는 달리 외부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범행에 기여했는가에 따라 정범과 공범을 구별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범설이나 종범설처럼, 무조건 정범 내지는 종범으로 보자는 견해는 구체적인 상황의 다양성을 고려할 때 유지될 수 없는 견해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와 독일의 다수설인 종범설은 부작위로 작위범에 참가하는 보증인의 보증의무를 혼동하고 있는 것 같다. 즉 이 보증의무를 결과발생을 방지할 의무가 아니라, 작위범의 범행행위를 저지할 의무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타인의 범죄행위를 저지할 보증의무는 부부간에 있어서도 인정되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부부가 아닌 경우에는 이를 인정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보증의무가 인정되기 어렵고, 이렇게 되면 정범은 물론, 종범까지 인정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생각하건대 부작위로 참가한 자의 정범 혹은 종범 여부는 구체적인 상황에서 부작위범의 보증의무 위반이 결과발생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과 같은 여러 상황을 상정해 보자.
① 아버지 A가 미성년자인 아들 B를 살해하기 위해, 이웃사람 C와 공모하여 아들을 강가의 다리로 데려간 뒤 C가 아들을 다리에서 밀어서 강에 빠뜨리고, A는 이를 지켜보고만 있어서 B가 사망한 경우.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A가 C의 범죄행위를 저지해야 할 의무가 아니라, C를 보호해야 할 의무이다. A는 전체적인 계획을 C와 세웠고 B를 강가로 데려가는 역할을 하고, B가 물에 빠졌을 때 구해주지 않았으므로, 사건의 전체로 보아 중요한 역할을 맡아 했으므로, 이는 부작위에 의한 공동정범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A가 C의 범죄행위를 저지할 의무가 있느냐의 문제는 여기서 생기지 않는다.
이 경우에 A는 처음에는 아들을 살해할 고의가 없었는데, C가 아들을 다리에서 미는 현장을 지나가다가 목격하였는데도, 차라리 어려운 생계에 아들이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여 아들을 구하지 않았다면, 보증의무는 있지만, 전체적인 사건진행으로 봐서는 C가 상황을 장악하고 있으므로 A는 부작위에 의한 방조의 죄책을 진다고 해야 할 것이다.
② A가 이웃에 사는 어린이 D를 살해하기 위해, 이웃사람 C와 공모하여, A가 D를 과자를 사준다고 하여 강가의 다리로 유인하여 데려간 뒤, C가 D를 다리에서 밀어서 강에 빠뜨리고, A는 이를 지켜보고만 있어서 D가 사망한 경우.
이 경우에 A에게는 D에 대한 보증의무도 없고, C의 범죄행위를 저지해야 할 아무런 의무도 없다. 따라서 A에게는 보증의무 자체가 없으므로, D를 구조하지 않은 행위는 불가벌이나, 방조범은 그 행위의 유형을 불문하므로 A가 D를 살해하기 용이하도록 강가로 유인해 온 것은 작위로 C의 범행을 도와준 것이므로, 여기서는 작위에 의한 방조만이 문제로 된다.
③ 남편 A가 평소 원한 있는 이웃집의 아들 C를 집으로 유인해 데려와서 살해하는 것을 아내 B가 그냥 보고만 있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우.
여기서 아내 B는 A의 범죄를 저지해야 할 보증의무는 인정되지 않고, 더군다나 이웃집 아들 C에 대한 보증의무는 없다. 따라서 아내 B는 보증의무 자체가 없으므로, 부작위에 의한 범죄의 참가의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 적어도 부작위에 의한 방조가 성립할려면 보증인으로서 보증의무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④ 남편 A가 평소 원한 있는 이웃집의 아들 C를 집으로 유인해 데려와서 살해하려고 할 때, 마침 집에 있던 가정부 D가 보고도 방치한 경우.
D 역시 A에 대한 보증의무도, C에 대한 보증의무도 없으므로 부작위에 의한 참가는 문제되지 않는다.
⑤ 남편 A와 아내 B가 아들 C를 살해할 목적으로 강가의 제방으로 데려가 위험한 쪽으로 걷게 했는데, 마침 C가 미끄러져 강에 빠졌는데, A와 B가 이를 방치한 경우.
이 경우 A와 B는 C에 대한 보증의무가 있고, 둘 중 한 명이라도 구조행위를 했다면 아들을 살릴 수 있었음에도 이를 방치하였다면, 둘 다 결과발생에 대해 똑같은 정도로 기여했다고 보아지므로, 부작위에 의한 공동정범이 된다고 해야 한다.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판단했을 때, 부작위로 작위범에 참가한 자가 결과발생에 대하여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종범 혹은 정범의 여부에 관계없이, 결과발생의 방지라는 보증의무를 가지는 보증인이라야 한다.
또한 부작위로 범죄에 참가한 자가 정범이냐 종범이냐는 부작위범의 보증의무 위반 자체가 결과발생에 얼마만큼 기여했는가, 즉 작위로 사건진행에 기여하지는 못했지만, 보증의무를 위반한 자체가 그 결과발생에 얼마나 큰 요인이 되었는가에 따라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
이런 논의를 전제로 본 평석의 판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판례에 따르면 「자신이 관리하는 특정매장의 점포에 가짜 상표가 새겨진 상품이 진열·판매되고 있는 사실을 발견하였다면 고객들이 이를 구매하도록 방치하여서는 아니 되고 점주나 그 종업원에게 즉시 그 시정을 요구하고 바이어 등 상급자에게 보고하여 이를 시정하도록 할 근로계약상·조리상의 의무가 있다」라고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피고인은 잡화매장을 관리하는 직원으로서 고객들이 가짜 상표가 새겨진 상품을 구매하는 결과를 방지할 보증의무가 있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피고인이 공동피고인의 상표법 및 부정경쟁방지법 위반행위를 방치한 것은 전제적인 사건의 진행으로 보아 결과 발생에 주된 역할을 한 것은 아니므로, 방조범이 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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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의 본질과 판례의 입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