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 - 음주운전 뺑소니 사건
강 미 영
대법원 1992.7.28. 선고 92도999 판결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도주차량),도로교통법위반】 [공1992.10.1.(929),2698]
[판시사항]
음주운전을 할 의사를 가지고 음주 만취한 후 운전을 결행하여 교통사고를 일으킨 경우 심신장애로 인한 감경 등을 할 수 있는지 여부(소극)
[판결요지]
형법 제10조 제3항은 ꡒ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행위에는 전2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ꡓ고 규정하고 있는 바, 이 규정은 고의에 의한 원인에 있어서의 자유로운 행위만이 아니라 과실에 의한 원인에 있어서의 자유로운 행위까지도 포함하는 것으로서 위험의 발생을 예견할 수 있었는데도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경우도 그 적용 대상이 된다고할 것이어서, 피고인이 음주운전을 할 의사를 가지고 음주 만취한 후 운전을 결행하여 교통사고를 일으켰다면 피고인은 음주 시에 교통사고를 일으킬 위험성을 예견하였는데도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경우에 해당하므로 위 법조항에 의하여 심신장애로 인한 감경 등을 할 수 없다.
[참조조문]
형법 제10조 제3항
[참조판례]
대법원 1968.4.30. 선고 68도400 판결(집16①형50)
Ⅰ 사안의 쟁점
형법상의 책임 원칙은 책임능력과 관련하여는 행위자가 구성 요건 실현 행위시에 책임 또는 책임능력이 있어야 그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다는 행위와 책임의 동시 존재의 원칙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원인에 있어 자유로운 행위는 원인 설정 행위 당시에는 ‘자유로운’ 책임 능력자이나 구성 요건 실현 행위시(결함 상태에서의 범행)에는 책임 무능력 상태에 있다. 여기서 행위와 책임의 동시 존재의 원칙을 고집하게 될 경우에는 범죄를 행할 의도로 스스로 책임 무능력 상태를 야기한 후 범행을 한 자를 처벌할 수 없게 되는 처벌 상의 흠결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제3항에 있어서는 크게 세 가지 점이 논란이 되고 있다. 첫째, 구성 요건 행위시에 책임 무능력자인 행위자를 처벌하는 근거(가벌성의 근거)는 무엇인지 둘째, 고의로 원인 설정 행위를 한 자가 미수에 그친 경우 실행의 착수 시기는 언제인지(실행의 착수 시기) 셋째, 원인에 있어 자유로운 행위를 어느 범위까지 인정할 수 있는지 이다.
Ⅱ 가벌성의 근거와 실행의 착수 시기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의 가벌성이 문제가 되는 것은 행위와 책임의 동시 존재의 원칙과 구성 요건의 정형성이라는 형법상의 근본 요청 때문이다.
1. 원인행위설(일치설, 구성요건해결모델)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는 책임능력 결함 상태에 빠진 자신을 도구로 이용하는 간접정범과 유사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원인 행위가 실행 행위이며 동시에 원인 행위가 책임 비난의 근거라는 견해(종래 통설)이다.
2. 원인 행위와 실행 행위의 불가분적 관련설(예외설, 책임해결모델)
책임능력 결함 상태 하에서의 구성요건적 실현 행위를 실행 행위로 파악하면서도 책임 비난의 근거는 원인 설정 행위에서 찾는 견해이다(최근의 다수설). 행위자가 유책하게 책임능력 결함 상태를 야기하여 범죄를 행하게 했다는 점에서 원인 설정 행위와 실현 행위는 불가분적 관련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한다. 이 견해에 의하면 원인에 있어 자유로운 행위는 실행 행위와 책임능력이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예외적 형태가 된다.
3. 소결
원인행위설을 따를 경우에는, 행위와 책임의 동시 존재의 원칙은 관철될 수 있으나, 구성 요건의 정형성이 없는 원인 설정 행위 실행 행위로 본다는 것은 오히려 가벌성을 확장시킬 위험이 있으며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반하게 된다. 즉 실행 착수 시기가 지나치게 앞당겨져 구성 요건의 정형성을 상실시킬 뿐만 아니라, 그 만큼 미수가 인정될 수 있는 폭이 넓어져 상대적으로 예외설에 비하여 피고인에게 불리하다. 결국 책임 원칙의 핵심인 ‘법치 국가적 형벌 제한’이라는 요청은 오히려 원인행위설 보다는 예외설에서 관철되고 있다.
Ⅲ 원인에 있어 자유로운 행위의 유형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는 책임능력 결함 상태의 야기 또는 결함상태 하에서의 구성 요건 실현 행위에 대한 고의 또는 과실의 결합 관계에 따라 네 가지 유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 결함 상태에서의 범행에 대한 고의․과실 역시 원인 설정 행위시에 존재하여야 한다는 것이 통설이다.
구분(원인 행위시 기준) 결함 상태의 야기 결함 상태에서의 범행
제 1 유형 고의(인식 또는 용인) 고 의
제 2 유형 고 의 과 실
제 3 유형 과 실 고 의
제 4 유형 과 실 과 실
오늘날 제1유형만이 고의에 의한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이고, 나머지 세 유형은 과실에 의한 원인에 있어 자유로운 행위에 속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다수설이다.
Ⅳ 형법 제10조 제3항의 해석
형법은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 상태를 야기한 자의 행위에는 전 2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 ‘위험 발생’의 의미
책임능력 결함 상태에서 범하게 될 고의범 또는 과실범의 구성 요건에 해당하는 범죄를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2. ‘예견’의 의미
‘예견’의 해석에 대해서는 인식․인용한 경우인 고의만을 가리킨다는 견해(조상제)와 고의뿐만 아니라 예견할 수 있었던 경우인 과실도 포함된다(다수설)는 견해가 대립한다. 원인에 있어 자유로운 행위의 대부분이 과실에 의한 것임에도 이를 고의에 한하여 해석할 경우 처벌의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으므로 형법은 책임능력 결함 상태에서의 범행에 대해서 고의가 있는 경우와 과실이 있는 경우의 모두를 규정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3. ‘자의로 심신장애 상태의 야기’의 의미
‘자의’의 해석에 대해서는 심신장애 상태의 야기에 대해 고의가 있는 경우만을 의미한다는 견해(조상제, 배종대, 박상기)와, 고의뿐만 아니라 과실도 포함된다는 견해(다수설, 판례)가 대립되고 있다. 자의란 스스로 또는 자유로운 의사라는 의미이므로 고의․과실과 직접 결부되지는 않지만 비자의가 아닌 한 고의와 과실을 포괄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며, 따라서 형법은 원인에 있어 자유로운 행위의 네 가지 유형을 모두 규정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심신장애 상태는 심신 상실과 심신미약을 모두 포함한다.
4. ‘전 2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의 의미
책임 무능력 상태의 행위일지라도 처벌되고 한정책임능력일지라도 형이 감경되지 않는다. 즉 고의에 의한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는 고의범으로 처벌되고 과실에 의한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는 결함 상태에서의 범행에 대해 과실범 처벌 규정이 있으면 과실범으로 처벌된다.
그런데,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는 구성 요건 행위 당시 책임능력이 없는 자에게 책임능력을 인정하는 것으로 오로지 책임능력만을 수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구성 요건과 위법성을 포함하는 불법의 영역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원인에 있어 자유로운 행위의 불법에 관한 판단에 있어서는 객관적으로 실현된 행위만을 문제삼으면 되고 이 단계에서 원인에 있어 자유로운 행위를 고려해서는 안된다.
Ⅴ 사안의 검토
본 판결이 의미를 갖는 것은,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의 법리를 구체적으로 해석하여 적용시킨 점과 나아가 이에는 ‘과실’의 경우도 포함된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밝힘으로써, 형법 제10조 제3항의 문언을 둘러 싼 논란을 어느 정도 해소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본 사안을 통하여 대법원은 형법 제10조 제3항은 고의에 의한 원인에 있어서의 자유로운 행위만이 아니라 과실에 의한 원인에 있어서의 자유로운 행위까지도 포함한다고 판시함으로써 그 동안의 태도와는 달리 분명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본 판례 사안이 원인에 있어 자유로운 행위의 고의 유형인지(신동운) 아니면 과실 유형인지(박상기)에 대해서는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피고인의 특가법 제5조의 3 제2항 위반죄(치상 후 유기 도주)는 과실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에 해당하고, 도로교통법 제107조의 2 제1호 위반죄(주취 중 운전 금지)는 전형적인 고의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 관련 판례 - 대법원 1995.6.13. 95도826
甲은 자신의 차를 운전하여 술집에서 술을 마신 후 야간에 비가 내려 전방 주시가 힘든 상황에서 혈중 알콜 농도 0.18%의 음주 상태로 속도를 줄이거나 전방을 잘 살피지 아니하고 멋대로 차량을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를 낸 후 도주한 사안에서, 대법원은 “피고인이 자신의 차를 운전하여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신 후 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일으켰다면, 이는 피고인이 음주할 때 교통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는 위험성을 예견하고도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경우에 해당하여, 가사 사고 당시 심신미약 상태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심신미약으로 인한 형의 감경을 할 수 없다. ”고 판시하였다.
이인규, 판례형법[총론], 탁월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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