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01. 5. 15. 선고, 2001도1089 판결 (공보 2001, 1435면)
[사건개요]
피해자(남편)는 돈을 잘 벌지 못하면서도 낭비와 도박의 습벽이 있고, 사소한 이유로 피고인에게 자주 폭행․협박을 하였으며, 변태적인 성행위를 강요하기도 하였다. 이들 부부는 결혼생활의 파탄으로 1999년 11월경부터 별거하였고 2000년 1월 10일경 피고인(부인)이 서울가정법원에 이혼소송을 제기하여 그 소송이 계속 중이었다.
같은 해 4월 23일 10시 40분경 피해자가 피고인의 월세방으로 찾아오자 피고인은 피해자가 칼로 행패를 부릴 것을 염려하여 부엌에 있던 부엌칼 두 자루를 방의 침대 밑에 숨긴 후 문을 열어 주었다. 방에 들어온 피해자는 피고인에게 이혼소송을 취하하고 재결합하자고 요구하였으나 피고인이 이를 거절하면서 밖으로 도망가려 하였다. 그러자 피해자는 도망가는 피고인을 붙잡아 방안으로 데려왔다.
피해자는 부엌에 있던 가위를 가져와 피고인의 오른쪽 무릎 아래 부분을 긋고 피고인의 목에 겨누면서 이혼하면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하였다. 이어 피고인의 옷을 강제로 벗기고 피고인에게 자신의 성기를 빨게 하는 등의 행위를 하게 한 후, 침대에 누워 피고인에게 성교를 요구하였다. 피고인이 이에 응하지 않자 손바닥으로 뺨을 2~3회 때리고, 재차 피고인에게 침대 위로 올라와 성교할 것을 요구하며 “너 말을 듣지 않으면 죽여 버린다.”라고 소리치면서 침대 위에서 상체를 일으키는 순간, 계속되는 피해자의 요구와 폭력에 격분한 피고인이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서 침대 밑에 숨겨두었던 칼(증 제1호, 길이 34㎝, 칼날길이 21㎝) 한 자루를 꺼내 들고 피해자의 복부 명치 부분을 1회 힘껏 찔러 복부자창을 가하였다. 이로 인하여 피해자는 장간막 및 복대동맥 관통에 의한 실혈로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다.
[대법원의 판결]
피고인이 피해자로부터 먼저 폭행ㆍ협박을 당하다가 이를 피하기 위하여 피해자를 칼로 찔렀다고 하더라도, 피해자의 폭행ㆍ협박의 정도에 비추어 피고인이 칼로 피해자를 찔러 즉사하게 한 행위는 피해자의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위행위로서의 한도를 넘어선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이러한 방위행위는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없는 것이므로, 자기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행위로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라거나, 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정당방위 또는 과잉방위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생각해 볼 점]
부엌에 있던 가위로 피고인의 오른쪽 무릎 아래 부분을 실제로 긋고 피고인의 목에 겨누면서 이혼하면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하였다. 이어 피고인의 옷을 강제로 벗기고 피고인에게 자신의 성기를 빨게 하는 등의 행위를 하게 한 후, 침대에 누워 피고인에게 성교를 요구하였다. 피고인이 이에 응하지 않자 손바닥으로 뺨을 2~3회 때리고, 재차 피고인에게 침대 위로 올라와 성교할 것을 요구하며 “너 말을 듣지 않으면 죽여 버린다.”라고 하였다.
이런 상황이라면 단순한 협박이라 할 수 없고, 피고인의 경우 자신의 목숨까지도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도망쳤지만 붙잡힌 상황이고, 피해자가 가위로 바로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상황에서 팔이나 다리와 같은 부위를 칼로 찌른다고 해서 과연 그런 위기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런 사후 정황과 피해자와 피고인의 위치 등을 고려해보면 피고인이 공격을 가할 수 있는 신체부위는 가슴이나 복부 정도로 보여지는데 그 중 복부가 덜 위험한 곳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상당성을 부정한 판례는 의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정당방위의 사회윤리적 제한의 측면에서 극단적인 법익 불균형이 생기는 경우에는 정당방위가 부정된다고 하는데 사례의 경우를 극단적인 법익의 불균형이 있다고 볼 수 있는가. 판례의 견해나 교과서에 이 판례가 소개되는 형태를 보면 단지 성행위를 강요당하는 위협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에 따라 극단적인 불균형이 있다고 보는 듯 하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피고인은 변태적 성행위를 강요당하는 위협뿐만이 아니라 직접적인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임을 고려한다면 극단적인 법익 불균형은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정당방위로 볼 수 있는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판례는 정당방위를 너무 인색하게 인정하는데 이 사례를 통해서도 그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판례는 과잉방위도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더욱 의문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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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죄에 있어 폭행.협박의 판단기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