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식, 부진정부작위범에 있어서 정범과 공범의 구분, 고시계 2003년 10월
다른 자료를 찾던 중 우연히 고시계에서 이 글을 발견했다. 기존의 이론 소개에 그쳤으려니 하고 대충 주루룩 훑던 중에, ‘의무범’과 ‘지배범’이라는 용어를 발견하고 멈칫 했다.
정범과 공범의 구분에 있어서는, 작위범에서의 통설적인 구별기준인 행위지배설을 부작위범에도 적용할 것인지가 논의되고 있고, 다수설은 부작위범 사이의 공동정범의 경우에는 공동의 의무위반이 있으면 정범이 된다고 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부작위범이 작위범에 관여한 경우에는 행위지배가 없어 방조범만 성립한다고 함으로써 일관성있는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부작위범이 부작위범에 관여하였는가 아니면 작위범에 관여하였는가에 따라 정범과 공범의 구별기준이 달라질 수는 없는 것이라는 것이 원형식 교수의 설명이다. 매우 타당성 있는 말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저자는 의무범과 지배범이라는 약간은 생소한 용어를 설명하고, 이를 이용해서 부작위범에 의한 공범을 정범과 구별하고 있다. 의무범이란 구성요건에 앞서 존재하는 형법외적인 특별의무를 침해할 수 있는 자만이 정범이 될 수 있는 구성요건이므로, 그 정범의 기준은 ‘공·사법상 특별의무’가 되고, 지배범이란 정범의 자격이 제한되지 않고 누구나 정범이 될 수 있는 구성요건으로, 그 정범의 기준은 ‘행위지배’가 된다.
얼핏보면 신분범과 비슷한 이 의무범의 개념에 대해서는 그 이해방법이 학자마다 다르나, 저자는 이 의무범을 신분범의 특수한 형태로 보고있다. 즉 신분범의 신분은 구성적·가중적·감경적·책임조각적·형벌조각적 신분을 다 포함하나, 의무범에서는 구성적·가중적 신분만을 ‘특별의무’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저자는 지배범은 소극적 회피의무를 가졌고, 의무범은 적극적 보호의무를 가졌기에, 전자는 행위지배가, 후자는 특별의무 위반여부가 정범의 요소가 된다고 본다. 따라서 진정부작위범은 소극적 회피의무만을 가진 지배범이라 하여, 행위지배가 있을 경우 정범이 된다. 한편 부진정부작위범은 기능설에 따라 감독의무에 기한 부작위범은 소극적 회피의무가 있는 지배범이고, 보호의무에 기한 부작위범은 적극적 보호의무를 가진 의무범으로 보아 그 정범과 공범을 구별하고 있다. 즉 위험원에 대한 감독의무를 가진 자, 예컨대 맹견을 가진 주인은 그 개가 타인의 법익을 침해하지 않도록만 하면 되는 소극적 회피의무를 가졌으므로, 그 개로 인한 법익침해에 주인의 행위지배가 없는 한 그 법익침해의 결과에 대한 정범이 될 수는 없지만, 보호의무를 가진 보증인, 즉 어린이를 데리고 있는 부모는 그 어린이에게 법익침해의 결과가 일어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으므로, 그 의무의 위반만 있을 시에는(예컨대 타인이 어린이를 상해하는 것을 보고만 있었던 경우) 비록 행위지배가 없었다 하더라도 정범이 된다는 것이다.
이 저자의 설명과 이론은 상당히 경청할만하고 논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기존의 견해와는 달리 의무범과 지배범이라는 개념으로 정범과 공범을 구별하려는 발상 또한 참신하다고 본다.
그러나 문제점은 그 개념 조차 의견대립이 있는 의무범과 지배범이라는 것을 기준으로 삼은 점이고, 또한 부진정부작위범을 두 가지로 나눈 기능설 또한 그것이 보증인적 지위의 발생근거로 확실한 지지를 받고 있는 학설은 아니라는 점이다. 즉 불확실한 개념들을 가지고 이론 구성을 한 점은 모래 위에 성을 지어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상당히 가치있다는 생각이 들며, 저자가 각종 개념을 이해하고 있는 방식도 논리적인 것 같다. 의무범과 지배범이라는 개념이 부작위범의 정범과 공범의 구별기준으로는 물론, 부작위범의 이론과 관련해서 어떤 실마리가 될 수는 없을까 하는 고민을 던져주게 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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