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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지]

1. 법률가 양성 제도의 "개혁"을 위한 토론에서 중요한 두 가지 논점은 법률실무가 선발 제도(선발인원과 선발방법), 그리고 우리나라 판례의 전통을 가르칠 주체이다.
2. 법학전문대학원을 도입할 것인지는 "개혁"을 위한 논의에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3. 변호사 수를 늘이기 위해 법학전문대학원 도입을 주장한 것인데, 법학전문대학원 도입에 반대하지 않을 테니 변호사 수를 현 수준에서 동결하자는 식으로 토론이 전개되고 있다.
4. 법률시장이 개방되어 외국 변호사들이 국내에 진출하게 될 마당에 한국 변호사 수를 제한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5.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한국 변호사도 외국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될텐데, 한국 변호사의 수를 제한하는 것은 다음 세대의 생계 수단을 막는 것이다.
6. 현행 제도를 개선했다고 할 수 있으려면, 다음 4가지를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 : 사법시험 응시자격을 법학과 3학년 수료자로 제한하고, 선발인원을 대폭 증원하며, 시험의 관리와 합격자 연수를 각 고등법원으로 이관한다.
7. 각 대학은 정상적인 법학교육이 가능한 수준으로 인적 · 물적 설비를 보완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폐과, 통합 등의 구조조정도 받아들여야 한다.
8. 각 대학은 국제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법률가를 양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9. 현재의 법과대학이 추상적인 개념이나 가르칠 뿐, 실무를 가르치지 않고 있거나 실무를 가르칠 능력이 없다는 주장은 오해에 기인한 것이다.
10. 법과대학과 법과대학 교수들이 소외된 가운데 토론이 전개되고 있는데다가, 법학전문대학원을 도입하되 총 정원을 제한하기 위해 극소수의 대학에만 인가하자는 방안이 알려지면서, 대학들 사이에 무리한 법학전문대학원 유치 경쟁을 유발하는 등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11. 설사 법조실무가 선발인원을 현재의 사법시험 합격자 수인 1000명으로 제한한다고 하더라도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정원은 1200명 ~ 1300명보다 훨씬 많은 2000명으로 잡지 않으면 내실 있는 교육을 담보할 수 없다.
12. 또한 극소수의 법학전문대학원을 설치하게 되면 한국 법학의 연구기반은 무너지고 만다.
13. 더구나 법조실무가 선발인원을 늘이지 않으면 이를 개혁이라고 부를 수 없고, 혼란만 부르게 된다. 따라서 극소수의 대학에만 법학전문대학원을 설치하느니 지금 상태로 그대로 두는 것이 좋다.

법학전문대학원 제도의 도입을 두고 말이 많다. 1995년 당시 세계화추진위원회("세추위")가 이 문제를 거론한 후 거의 10년이 흘렀건만, 최근에야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모양이다. 언론에 따르면, 변호사 단체만 반대할 뿐,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를 도입하기로 의견이 거의 모아졌다고 한다. 그런데, 언론과 풍문을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논의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 같아서 대학에서 법학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무척 염려스럽다. 이 염려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이다.

필자는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를 반드시 도입해야 된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 법학전문대학원 도입에 반대한 적도 없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물론 필자도 지금의 법학교육 제도와 법조실무가(판사 · 검사 · 변호사) 선발 제도는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믿는다. 다만, 필자는 법학전문대학원 제도의 도입만으로 지금의 법학교육 제도와 법조실무가 선발 제도가 개선되거나 개혁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렇다고 법학전문대학원 제도가 법학교육이나 유능한 법조실무가의 양성에 방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의 모든 제도가 그런 것처럼, 미국식 법학전문대학원 제도에도 장점과 단점이 있고, 지금의 법학교육제도에도 마찬가지로 장점과 단점이 있다고 필자는 믿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법학교육 제도와 법조실무가 선발 제도에 대한 담론을 매우 비합리적이고 미신적인 방법으로 이끌어 오다보니, 논의가 근본부터 잘못되고 있는데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1. 논의의 요지

1995년 세추위 당시부터 지금까지,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를 도입하자("도입론")고 주장하는 분들은 이 제도의 도입을 "개혁"이라고 부르면서 그 필요성을 설득하고 있다. "개혁"하려면 이 방법 밖에 없다는 투였다. 사석에서는 심지어 일본이 도입했으니 우리도 도입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반면에 이 제도의 도입을 반대("반대론")하는 분들은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미국과 이런저런 사정이 다른데 그 차이를 무시하고 이 제도를 무리하게 도입하면 오히려 유능한 법조실무가의 양성에 장애가 될 것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다가 "개혁" 자체를 반대하기는 어려운 분위기가 꽤 오래 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탓인지, 대부분의 반대론자들이 도입론으로 돌아서게 되었다. 다만, 법학전문대학원을 도입은 하되 극소수만 인가하고 입학정원도 소수로 제한해서, 마지막 남은 반대론자인 변호사 단체를 설득하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전국적으로 6 ~ 7개 정도의 법학전문대학원만 인가하고 한 개 법학전문대학원마다 매년 200명씩 신입생을 모집하게 하면, 법학전문대학원 졸업생은 매년 1200 ~ 1400명, 법조실무가로 선발되는 사람은 지금의 사법시험 합격자 수인 1000명 정도로 묶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대법원이 전체 입학정원을 1200명 가량으로 하여 법학전문대학원을 도입하는 안을 사법개혁위원회("사개위")에 제출했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법조실무가 선발 인원을 늘이지 않는 한 "개혁"은 이제 물 건너 간 것이라고 믿는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법학전문대학원을 도입하는 것도 무방하지만, 자칫 그 단점만 집대성해서 시행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안타깝게도 그 걱정이 기우가 아니었던 것 같다.

도입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를 도입한다고 개혁이 되는 것이 아니다. 법학교육 제도와 법조실무가 선발 제도를 개혁하거나 개선하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논점은 다음 두 가지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

(1) 법조실무가 선발의 인원과 방법
(2) 우리 판례의 전통을 교육할 주체

법학전문대학원을 만들 것인지 만들지 않을 것인지는 개혁이나 개선을 위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2. 원래부터 "선발인원"이 문제였다.

법학전문대학원 배출 인원을 줄여 반대론자들을 설득하는 방안이 등장한 최근에야 법조실무가 선발 인원이 문제가 된 줄 알겠지만, 사실은 원래부터 선발 인원을 늘일 것인가가 논의의 핵심이었다. 피차가 숨기고 있었을 뿐이다.

이미 1960년대의 고시잡지에서 사법시험 선발 인원을 늘이라는, 법학자의 글을 발견할 수 있다. 평범한 법학자의 글이 아니라 학계의 명망가가 쓴 글이다. 사법시험에서 매년 겨우 수십 명을 선발하다가 300명 규모로 늘인 1980년대 초에도 법조실무가들은 지금처럼 법조인의 질이 떨어진다는 우려 아닌 우려로 시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기 위해 애썼다.

도입론자들과 반대론자들은 겉으로는 줄곧 법학전문대학원 제도 도입의 당 · 부당을 놓고 설전을 벌였다. 그러나 도입론자들은 이 제도의 도입을 기화로 법조실무가의 수를 대폭 늘일 생각이었고, 반대론자들은 변호사의 대량 증원 방법으로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를 이용하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양쪽 모두 이런 내심의 의사는 숨기고 겉으로는 제도의 당 · 부당에 대해 토론을 벌였으니 토론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누구나 다 알만한, 교과서 수준의 원칙론을 녹음기처럼 되풀이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따라서, 필자가 보기에는, 도입론자들이나 반대론자들이나, 양쪽 모두 토론을 정직하지 못하게 이끌었다. 차라리 법조실무가 선발 인원을 늘여야 하는지, 따라서 변호사의 수를 늘여야 하는지를 두고 논쟁했더라면 토론이 훨씬 더 생산적이었을 것이다. 토론이 정직하지 못하다보니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변호사 수를 늘이기 위해 법학전문대학원 제도의 도입을 주장한 것인데, 법학전문대학원 제도 도입에 반대하지 않을 테니 변호사 수를 늘이지 말자는 응답을 내 놓은 셈이다. 이제는 법학전문대학원을 도입하지 않을 테니 변호사 수를 늘이자고 할 차례인가?

3. 변호사 수를 제한해야 하는가?

필자는, 어떤 직업에 종사하는 분들이라도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부도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혹은 단체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주장을 펴는 것 자체를 부도덕한 것으로 몰아붙이면 이성적인 토론은 불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변호사나 변호사 단체가 변호사의 영업상 이익을 지키기 위한 주장을 펴는 것 자체를 부도덕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다음 두 가지 원칙은 지켜야 할 것이다:

(1) 자신(들)의 이익을 우리 사회의 공적 이익과 조화시키는 범위를 벗어나는 주장을 펴는 것은 부도덕한 것이다. 공적 이익을 위해 사적 이익을 희생시키는 주장은, 무지의 소치가 아니라면, 하지 않을 터이니 다른 사람이 걱정할 것 없다. 그러나 사적 이익을 위해 공적 이익을 해치는 주장을 한다면 정당화 될 수 없다. 이는 적어도 대한민국이나 우리 사회를 임시로 모인 집단이 아니라 영속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2)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 내심은 숨겨두고 엉뚱한 이야기로 시간을 끄는 것은 영리한 협상전략일 수는 있지만, 결코 도덕적인 태도는 아니다.

변호사들과 마찬가지로, 교수들도 개인적으로 혹은 교수 단체를 통해 교수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주장을 펴는 것 자체는 부도덕한 것이 아니다. 참고로, 공적 이익을 도외시하고 교수인 필자의 사적 이익만 지키려면, 필자는 도입론이 아니라 반대론의 편에서야 할 것이다. 아무 것도 바꾸지 말고 현상을 유지하라!

그런데, 왜 변호사 단체가 변호사 수를 늘이는 것에 그렇게까지 반대하는지, 필자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한 논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법률가 1인당 인구수를 선진국과 비교하여 변호사 수의 증원이 주장되기도 했고, 법률시장 개방에 대비하기 위해 변호사 수의 증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변호사 수를 늘여 경쟁을 유발시켜야, 유능한 변호사를 키울 수 있고, 그래야 법률시장 개방에 대비할 수 있다")도 있었고, 우리 경제의 성장에 대비하기 위해 변호사 수를 늘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반면에 단순히 법률가 1인당 인구 수만 비교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변호사 선임률, 법무사 등 유사 법조 직역의 존재와 같은 사회구조, 사법제도, 법률문화, 국민의 법의식 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거나, 증원론이 경제성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법률시장 개방의 효과를 극히 낙관적으로 추측하고 있다는 증원반대론도 이미 제기 되었다.

우선 무엇보다도, 법률시장이 개방되어 외국 변호사들이 들어오는 마당에 국내에서 면허증 수를 제한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리가 아무리 면허증 수를 제한해도,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변호사 수는 필요한 만큼 늘어나게 되어 있다. 부족한 만큼 외국에서 유입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부족 분보다 더 많은 외국 변호사가 우리나라로 진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기 나라에서 일하는 것보다 한국에서 일하는 것이 벌이가 더 잘된다고 판단한 외국 변호사가 한국 변호사보다 유능하다면 그 사람은 우리나라로 진출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법률시장 개방이 된다고 하더라도 바로 외국 변호사들이 우리나라 변호사처럼 활동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다음과 같이 단계별로 외국 변호사의 활동이 허용되게 될 것이다 :

(1) 외국 Law Firm의 한국 내 사무실 설치 허용
(2) 한국 변호사와 외국 변호사의 동업 허용
(3) 외국 Law Firm의 한국 지점 설치 및 한국 변호사 고용 허용
(4) 외국 변호사가 한국 법정에 나가 소송을 수행을 하는 것을 허용

이 모든 단계를 거쳐 완전한 개방이 이루어지려면 장구한 세월이 걸릴 것이다. 특히 제4단계, 즉 외국 변호사의 한국 법정에서의 변론 허용은 영구히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 변호사들도 제4단계를 허용하지 않는 것을 최후 방어선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정작 외국 변호사들은 한국 법정에서의 소송수행에 별 관심이 없는지도 모른다.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우리나라에서나 법정에 나가 소송을 수행하는 것이 대단한 일인 줄 알지, (전체) 미국 변호사들의 수입 중 법정에서의 변론을 통해 버는 돈이 몇 퍼센트나 되는지 잘 알아보기 바란다. 아니, 미국까지 갈 것도 없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상장법인들이 지출하는 법률 서비스 구입 비용 중 어느 정도가 한국인에게, 그리고 어느 정도가 외국인에게 지불되고 있는지 잘 알아보기 바란다. 그리하여 스스로를 한국 법정 안에 가두어 버리고, 법원 문만 나서면 외국 변호사들이 활개를 치도록 내버려두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허용해 주더라도 언어상의 이유로 외국 변호사들이 한국에서 활동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예측도 있는 모양이다. 외국 변호사 면허를 가진 교포들의 국내 진출은 도외시한다고 하자. 법률시장 개방과 함께 교육시장도 개방된다. 예를 들어, 미국 Law School들이 국내에 진출, 미국 변호사 면허 취득을 목표로 하는 교육을 하기 시작하는 상황은 상정해 보았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언어 문제가 있다면, 미국 변호사들이 한국어를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 변호사들이 영어를 못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물론, 법률시장 개방은 단계별로 장구한 세월에 걸쳐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시장개방이라는 방향 자체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실현될 시장개방이라면 지금부터 준비하는 것이 옳다. 오래 걸릴 것이니까 그냥 살던 대로 살자는 주장은 온당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변호사들의 희망대로, 지금 변호사로 활동 중인 분들은 일생 동안 법률시장 개방의 영향을 받지 않을 텐데, 다음 세대의 변호사들이 시장개방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법률시장 개방이 오래 걸리기야 하겠지만, 변호사들이 희망하는 만큼 오래 걸리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WTO의 Doha Development Agenda("DDA")에 따라 우리나라가 2003년 3월 제출한 1차 양허안(Initial Offer)은 외국 변호사가 국내에 대표사무소를 설치하여 면허취득국의 법과 국제법에 대한 법률자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만 허용하고, 국내 변호사와의 동업 · 합작, 국내 변호사의 고용 혹은 법원 등 법적 절차에서의 대리 등은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이에 앞서 우리나라에 양허요청서(Request)를 제출한 25개의 국가 중 다수가 본국법, 제3국법, 국제법 분야의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4. 다음 세대의 생계를 막지 말라!

법률시장이 개방된다는 것은 외국 변호사들이 국내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시장개방이 된다는 것은 동시에 한국 변호사들이 외국에 나가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한국 변호사의 면허를 수적으로 제한해서 외국이나 국제무대 진출을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의 수를 줄여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분야를 막론하고 시장개방 이야기만 나오면 외국인의 국내 진출만 생각한다. 그것도 외국인들에게 잡아먹힐 것만 걱정한다. 그러나 지금 활동 중인 분들은 능력이 그것 밖에 안 되더라도, 앞으로는 우리나라에서 받은 변호사 자격을 가지고 외국으로 진출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할 것이고 또 나올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해외로 진출한 우리 기업들(지사 혹은 현지법인)에게도 매우 유익할 것이다.

그런데도 "적정 변호사 수" 운운하면서 면허증 수나 제한해 보려는 것은 매우 근시안적일 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의 생계 수단을 막는 것에 불과하다. "적정 변호사 수"를 아무리 과학적이고 설득력 있게 산출해 내더라도 결국은 외국 변호사들이 이 수치를 비웃을 것이기 때문에 근시안적이라 하는 것이고, 남들은 자기 나라에서 취득한 변호사 자격증을 들고 한국에 진출해서 밥벌이를 하고 있는데, 우리 젊은이들은 외국으로 진출하려고 해도 면허증이 없어서 나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생계 수단을 막는다고 하는 것이다. 선배들이 외국 진출을 못했으니 후배들도 하지 말라는 것인가?

따라서 도대체 "적정" 변호사 수(예를 들어, 서울지방변호사회, 적정 변호사 수에 관한 연구, 시민과 변호사, 2004년 3월호 별책)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상상이 만들어 낸 신기루에 불과한 것이다.

5. 현행 법률가 양성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

현행 제도에서 가장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것은 역시 사법시험제도이다. 대학입시제도가 중 · 고등학교 교육을 규정하는 것처럼, 사법시험이 대학의 법학교육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학전문대학원 도입론자건 반대론자건 한국 법학교육의 파행이 대학이나 대학교수의 책임이라는 생각에는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대학교수들 중에도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물론 교수들 잘못이 크다. 그러나 대학이나 대학교수가 동네북은 아니다.

생각해 보라. 사법시험 과목이 무엇이건 상관하지 않고 이상적인 법학과 커리큘럼을 운영할 대학이 있겠는가? 그런 대학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학교 학생들이나 학부형들이 그냥 둘 것 같은가? 하기는 무슨 상관인가? 학교에서 어떤 과목을 가르치건, 교수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건, 고시촌으로 가버리면 그만인데.

현행 사법시험 제도의 문제점은, 첫째, 응시자격에 제한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법학과 학생이라도 저학년 때부터 사법시험 응시하느라고 분주해서 도대체 제대로 된 법학교육이 이루어질 시간이 없다. 필자는 입학식도 하기 전에 사법시험에 응시한 법학과 신입생까지 본 적이 있다. 2학기가 되면 대학입시 수시 모집에 합격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고시학원 강의를 수강한다는 것이 이제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법학과 3학년은 마쳐야 응시할 수 있도록 해 주면, 적어도 정상적인 법학교육을 위해 3년의 시간은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법학과 학생들이 1 · 2학년 때부터 사법시험 1차시험 준비에 정신이 팔려 있기 때문에 생기는 폐단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1차시험 과목이 아닌 과목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2차시험 과목은 대개 졸업 후 고시학원에서 배운다. 속성과정으로. 2차시험 과목에 조차 들어있지 않은 과목은 그렇게나마 공부할 기회가 영영 없다.

이런 폐단에도 불구하고 이런 제도가 유지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2006년부터는 응시자격을 제한한다고는 하지만, 그 내용을 뜯어보면 "눈 가리고 아웅"인 까닭은 무엇일까? 필자가 보기에는 법학과 출신이 아닌 분("비법대생")들에게도 응시기회를 주기 위해서 그러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미처 교육기관이 제대로 갖추어지기 전에 필요했던 임시조치를 반세기 이상 연장하는 것일 뿐이다. 그 때야 제대로 된 법학교육기관이 없었으니 독학을 했거나 단기간의 속성과정을 거친 사람들이라도 일정한 시험을 거쳐 선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시에 그렇게 선발하고 자격을 준 것이 법조인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분야에서는 정규 교육기관이 자리를 잡은 후에는 비전공자에게 자격시험의 응시자격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정상화했는데, 유독 법조실무가의 선발과 자격부여는 여전히 이런 임시조치법에 따르고 있다. 이렇게 해서는 제대로 된 법률가를 양성할 수도, 선발할 수도 없다.

의과대학 졸업생이 아니라도(의과대학 2학년 학생이건, 법과대학 졸업생이건 상관없다) 의사국가고시에 응시자격이 있다고 상상해 보라. 법대 졸업생인들 합격하지 못할 것 같은가? 출제경향을 잘 파악해서 열심히 공부하면 수석인들 못할 것 같은가? 합격이야 하겠지만, 그렇게 해서 의사면허를 받은 사람을 우리는 "돌팔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비법대생의 사법시험 응시를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다양한 전공을 공부한 사람을 법조실무가로 선발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 지금 제도에서 사법시험에 합격할 정도로 법학 공부를 했다면, 원래의 전공을 제대로 공부했겠는가? 원래의 전공학과를 졸업할 때까지는 그 학과 공부를 충실히 하고, 법학은 졸업 후 비로소 공부하기 시작한 분에게도 법학과 3학년 수료를 요구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정상적인 법학교육을 생략해도 좋을 이유가 없다. 아무리 다양한 전공의 법조실무가가 필요하다고 해도, 결국 필요한 것은 다양한 전공이 아니라 법조인이기 때문이다. 법조인이 되려는 사람에게 2년(학사편입을 할 경우) 혹은 3년(신입생으로 입학할 경우) 정규 교육기관에서 법학 공부를 하라는 요구가 무리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방송통신대학도 있지 않은가?

현행 사법시험 제도의 두 번 째 폐단은, 선발인원이 매년 1000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전국의 100개에 가까운 법학과에서 매년 거의 1만 명에 육박하는 졸업생을 배출한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지나치게 많은 숫자이다. 그렇다고 해도 1만 명의 10%에 불과한 1000명을 선발하는 것은 지나치게 적다. 게다가 비법대생 합격자를 감안하면 법대 졸업생 중 사법시험 합격자는 10%에 훨씬 못 미친다.

이러다 보니 어떻게 해서든지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관건이고, 유능한 법조실무가가 되기 위한 소양을 기른다든지 외국이나 국제무대 진출을 위해 외국어를 공부한다든지 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의과대학 졸업생의 10%만 의사국가고시를 통과한다고 상상해 보라. 그래서 의과대학 학생들이 환자를 진찰하고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공부나 연습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의사국가고시 과목과 그 출제경향에만 신경을 쓴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 상상해 보라.

온 신경이 사법시험 합격에 쏠려있다 보니, 온갖 형태의 편법과 폐단이 등장하고 있다. 우선, 시험범위를 사실상 수험생이 통제하고 있다. 당장 아무 고시잡지나 펴서 소위 합격기를 읽어 보라. 과목별로 어느 저자의 어느 책으로 공부했는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부해야 하는지) 하는 부분을 읽어 보라. 어느 합격기나 똑 같다. 천편일률적이다. "형법은 이재상만 보면 된다. 다른 책은 볼 필요 없다"는 말은 모든 합격기에 똑 같이 등장한다. 이것이 바로 수험생들의 카르텔이다 : "이것저것 보지말고 이 책만 보자. 모든 수험생이 이 책만 보면 채점관들인들 어떻게 할 것인가?" 실제 필자가 학교 모의고사에서 이재상 교수의 교과서에 등장하지 않는 이론을 묻는 문제를 출제해 보니, 200명이 넘는 응시자 거의 전원이 백지 답안지를 제출했다.

2차시험, 특히 1차시험 과목(소위 "기본3법")이 아닌 2차시험 과목(소위 "후4법")의 경우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고시학원 강의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고시학원 강의의 목표는 면과락이라고 한다. 결국 이 나라 법조는 대법원이 아니라 고시학원 강사들이 지배하고 있는 셈이며, 이 나라 법조의 수준은 겨우 면과락 정도인 것이다. 사법시험 2차시험 채점을 해 본 분이 전하는 바로는, 똑 같은 답안지가 4 ~ 500매씩 나오더라는 것이다. 국내 어느 교과서도 언급하고 있지 않은 독일 학자의 이름까지 똑 같은 위치에 등장할 정도였다고 한다. 수험생들의 카르텔이 어느 정도 강고한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또, 학생들이 입학과 동시에 사법시험에 매달리다 보니 법학과 수업은 몇 과목을 제외하고는 파행을 면할 수 없다. 제외되는 몇 과목이란 사법시험 과목, 그 중에서도 1차시험 과목이다.

그리고, 1차시험 선택과목의 경우, 선택의 기준은 흥미나 적성이 아니다. 어느 과목이 점수가 잘 나오느냐가 선택의 유일한 기준이다. 그러다 보니 선택과목들 사이에 문제 쉽게 내기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적어도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이것이 과연 교육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을까?

이런 폐단을 없애려면 선발인원을 대폭 늘이는 수밖에 없다. 증원반대론이 염려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 하나는, 합격자 수를 늘이면 합격자의 수준이 떨어져서 법률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변호사 수가 늘어나면 변호사들의 수입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선발인원을 늘인다고 법조실무가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주장을 필자는 믿을 수 없다. 300명 뽑던 시절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변호사들은 수십 명 뽑던 시절에 합격한 변호사들보다 저질인가? 1000명씩 뽑는 요즘 사법시험에 합격한 변호사들은 300명씩 뽑던 시절에 합격한 변호사들보다 저질인가?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무엇이 문제인가? 아무리 많이 뽑더라도 합격자 중에 우등생도 있고 열등생도 있을 것이다. 설마 합격자 수를 늘이면 모든 합격자가 열등생으로 채워질 것이라고 주장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등생은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해서 돈도 많이 벌 것이고, 열등생은 저질의 법률 서비스 밖에 제공할 수 없어서 결국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 자본주의 하자는 것 아닌가? 사법시험 합격자 수를 이미 꾸준히 늘여왔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날이 갈수록 더 열악한 법률 서비스를 제공받지는 않았던 것도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변호사 수가 늘면 변호사의 수입이 줄어들 것이라는 염려도 기우에 불과하다. 필자가 보기에 법률 서비스에 대한 잠재적 수요는 아직 무궁무진하다.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요구하고 있는 형사재판을 제대로 운영하려면 얼마나 많은 법관이 더 필요한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시민들이 행정청과 접촉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운전면허취소와 공무원징계를 다투는 사건이 전체 행정소송의 절반을 넘는 현실이 정상적이라고 보는가? 사법개혁위원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형사절차 개선안을 현실화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변호사가 더 필요한지 생각해 보라. 우리 기업이 해외에 세운 지사나 현지법인의 법률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또 얼마나 되는지 알아 보라. 우리 기업이 이미 외국 변호사에게 지불하고 있는 법률 서비스 구입 비용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잘 알아 보라.

그러나, 한편으로는, 변호사들의 걱정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미 신축 아파트 보존등기 업무를 처리하는 변호사가 있다고 하고, 공인중개사와 업권을 다투는 변호사의 이야기도 이미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가다가는 변호사가 대서방 비슷하게 되는 것 아닌가 걱정할 법도 하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고 해도 무엇이 문제인가? 이미 활동 중인 변호사들은 대량 증원 이전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우수한 분들이니 대서방에 나앉을 염려는 없을 것이다. 대량 증원 이후에 배출된 변호사라도 우등생들은 대서방에 나앉을 염려가 없을 것이다. 대서방에 나앉을 사람은 대량 증원 이후에 배출된 변호사들 중에서 열등생들뿐이다. 아무리 열등생이라도 국가가 변호사 면허를 주었으니 국가가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라면, 이 무슨 어이없는 선민의식인가? "지금 변호사로 활동 중인 우리를 특별 취급해 달라"는 선민의식은 또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장래에 배출될 변호사를 모두 특별 취급해 달라"는 선민의식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변호사라도 능력이 없으면 대서방에 나앉는 것이고, 그 마저도 안되면 거리에 나앉는 것이다.

사실, 변호사 면허만 있으면 무능한 사람(무능한 변호사도 있다는 말이지 한국 변호사가 모두 무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도 변호사로 사는 데 지장이 없다는 것이 우리 법조계의 문제 중 하나였다. 경쟁이 없다보니, 자기 계발을 위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정말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러 장사가 안되더라도, 외국어와 외국법을 공부해서 국제무대로 진출할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우리가 외국인에게 시장을 막아 놓았으니 우리도 나갈 수 없었던 것이다. 정말 장사가 안되더라도, 법률실무에 필요한 다양한 분야의 소양을 축적해서 시장을 개척하거나 지킬 생각은 하기 않았다. 고작 한다는 것이, 그런 골치 아픈 분야는 이미 암암리에 외국인들에게 내어 주고(내어주지 않으려고 해도 방어할 능력이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보존등기나 하고 공인중개사와 업권 다툼할 생각이나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폐단은 변호사 수를 대폭 늘여 변호사들끼리도 경쟁하도록 만들어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학문의 자유"를 위해 원칙적으로 신분이 보장되어야 할 대학교수들에게도 경쟁을 요구하고, 경쟁에서 밀린 교수는 도태시키겠다는 시대이다. 수지를 못 맞춰서 병원 문을 닫는 의사가 부지기수인 시대이다. 변호사는 무슨 특별한 선민이라서 경쟁 없이 살겠다는 말인가? 경쟁이 도입되면 필연적으로 도태되는 사람이 나온다. 도태 없는 경쟁이란 그 자체로 형용의 모순이다. 이미 활동 중인 변호사들이 이런 특별 대우을 받겠다는 것은 이해하더라도, 미래에 배출될 모든 변호사가 이런 특별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말인가?

따라서 법학전문대학원을 도입하거나, 사법시험 응시자격을 법대 졸업생에게만 주는 등의 변화를 모색하더라도 변호사 수를 대폭 증원하지 않는 한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현행 사법시험 제도의 세 번 째 문제점은, 시험을 중앙정부에서 집중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험관리에 낭비가 심하다. 1차시험의 경우 기출문제 피하고, 문제집에 있는 문제 피하고, 학교나 고시학원 모의고사 문제 피하고 하다보면 낼 문제가 그리 많지 않다. 거기다가 정답시비까지 막아야 하니 결국 변별력 있는 문제를 출제하기란 지난한 일이 되고 만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판례를 많이 기억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유리하게 출제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정답시비를 가장 확실하게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판례를 암기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판례의 취지를 이해할 줄 아는 수험생만 풀 수 있는 문제는 늘 정답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교수들은 학회하면 늘 판례를 비판하다가, 막상 출제위원으로 들어가면 판례를 묻는 문제를 잔뜩 출제하고 나오는 고충을 겪을 수밖에 없다.

2차시험의 경우에는, 응시자 수가 많다보니, 채점관들의 부담이 이미 한계에 닿았다. 합격자 수를 지금보다 늘이면 당장 시험위원 구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이다.

수험생들도 서울에 모여서 시험을 치다보니 불편한 점이 많다. 서울에 거주하는 수험생들이야 문제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비수도권 지역 학생들은 사법시험 등의 국가고시 2차시험에 응시하는 기간에 지출하는 경비와 겪어야 하는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왕복 교통비는 그렇다 치더라도, 시험기간 몇일 방을 세 놓으면서 고시생들에게는 한 달치 하숙비를 요구한다고 한다. 그나마 시험장과의 거리, 시험장까지의 교통편, 마지막 정리와 휴식, 숙면에 필요한 조용한 환경 등을 감안해서 좋은 조건의 방을 구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지금의 제도 하에서도 개선하지 못할 것도 없다. 1차시험처럼 각 지방에서 시험을 치게 하면 된다. 훨씬 관리가 까다로운 1차시험도 각 지방에서 치는데, 2차시험을 왜 그렇게 못하는지, 필자는 이해할 수 없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려면 시험관리기관을 분권화하는 수밖에 없다. 필자는 각 고등법원이 시험을 주관하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고 본다. 우선, 고등법원의 소재지를 보면 지역적으로 적당하게 분포되어 있어서 시험관리의 지역적 분권화라는 취지에 맞고, 둘째, 법조실무가 선발 시험은 법원이 감독 · 통제하는 것이 업무의 성격상으로도 적합하고, 셋째, 대학이 스스로 시험을 관리하는 것보다 법원이 관리하는 것이 시험에 대한 신뢰를 보장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가 법조실무가 선발 시험에서 이른바 "지역할당제"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입장을 밝힐 만큼 심사숙고해 보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지역할당제"를 못할 것도 없다는 정도가 필자의 생각이다.

6. 사법연수원을 어떻게 할 것인가?

현행 제도의 또 한가지 문제는, 사법시험 합격자의 연수를 사법연수원이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잘 아시다시피 사법연수원은 대법원에 설치된 연수 · 수습기관이다(교육기관이 아니다).

법조실무가를 교육하는 마지막 단계는 우리나라 판례의 전통을 가르치는 것이어야 한다. 판례를 고수할 것인지, 아니면 판례를 바꾸기 위해 노력할 것이지는 법조실무가로 활동하게 되면서 각자가 법률가로서의 양심으로 결정할 일이지만, 적어도 우리나라 판례가 어떤 전통을 쌓아왔는지를 모르면서 법조실무가로 첫발을 내딛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이 중요한 교육을 대법원 소속기관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이 판례를 생산해 놓고는, 또 스스로 신참 법률가들에게 자신이 생산한 판례를 교육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반드시 판례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입장에서 가르치라는 것이 아니다. 판례를 생산한 주체와는 일정한 거리를 둔 사람이 교육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일을 맡기기에 적합한 기관 역시 고등법원이라고 생각한다. 각 고등법원에 지금의 사법연수원과 같은 기구를 두어 법조실무가 선발 시험에 합격한 사람의 수습을 맡기는 것이 좋겠다.

필자는 이 문제가 선발인원 문제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법학전문대학원 제도나 선발인원과 같은 쟁점에 묻혀 버린 것 같다.

[필자의 개선안]

지금까지 개진한 의견을 종합하여, 필자의 개선안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1) 사법시험 응시자격을 법학과 3학년 수료자로 제한한다.
(2) 사법시험 선발인원을 대폭 증원한다.
(3) 사법시험의 관리를 각 고등법원으로 이관한다.
(4) 사법시험 합격자의 연수를 위한 연수원은 각 고등법원에 설치한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러한 개선방안 정도라도 시행된다면 제대로 된 법학 교육이나 법조실무가 양성의 기본 환경은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개선방안을 시행하기 위해 반드시 법학전문대학원을 도입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법학전문대학원을 도입하더라도 이러한 개선방안을 시행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법학전문대학원을 도입하는 것이 관건이 아니라, 법학전문대학원을 무엇으로 채우는가가 관건인 것이다.

7. 법대 교육이나 법대 교수들이 문제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분명하다 : "그렇다. Period."

법과대학이나 법대 교수들이 개선해야 할 것은 많다. 그러나 만악(萬惡)의 근원이 법대나 법대 교수들이라고 몰아 붙이는 것은 이성적인 태도가 아니다.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한국의 법과대학이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는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하도록 인적 · 물적 설비를 갖추는 것이다. 2003년 3월 현재 전국의 97개 법학과 중 전임교원의 수가 5명 이하인 학교가 25개, 6명 ~ 10명인 학교가 43개로 10명 이하인 학교가 무려 70%에 달한다. 11명 ~ 15명인 학교는 17개, 16명 ~ 20명인 학교는 7개, 21명 ~ 30명인 학교가 4개, 31명 이상인 학교는 1개뿐이다. 수도권 · 비수도권 사이에는 큰 차가 없다. 서울 · 경기 · 인천 지역에 35개의 법학과가 있어서 전국의 36%가 수도권에 있는 셈인데, 이 중 60%인 21개교의 전임교원 수가 10명 이하이다. 법학과에서 가르쳐야 할 과목을 생각하면, 잘 알다시피, 학생수가 아무리 적더라도 있어야 할 교수는 있어야 한다. 5명 이하, 혹은 10명 이하의 전임교원으로 제대로 된 교육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또 연구와 교육을 도와야 할 조교 수를 살펴보면 부끄럽지 않은 대학이 거의 없을 것이다.

각 학교는 시급하게 정상적인 법학교육이 가능한 수의 전임교원 수와 조교 수를 확보해야 한다. 학생 정원이 작아서 많은 수의 교원을 확보하면 도저히 수지를 맞출 수 없다면, 정원을 늘이든가, 폐과를 하든가, 다른 학교와 통합을 하든가, 제대로 된 교육이 가능한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학생들에 대한 예의이다.

물적 설비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강의실이 부족한 학교는 드물 것이다. 중요한 것은 도서관과 전산실의 시설을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간이 문제가 아니다. 도서관은 장서를 비롯한 다양한 정보 매체(저널, 데이터베이스, 음성매체, 영상매체 등)를 제대로 갖추고 전문적인 사서 인력을 보완해야 한다. 전산실은 기기의 업그레이드 주기를 단축하고 컴퓨터를 부전공 혹은 복수전공한 법학전공자를 관리자로 확보해야 한다. 법학전문대학원이 문제가 되면서 모의법정 설치에 신경을 쓰는 학교들이 많은데, 필자는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모르겠다.

엄격히 말하자면 이런 설비의 보완은 교수나 대학의 책임이라기 보다는 설립자(국 · 공립학교의 경우에는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한 국가, 사립학교의 경우에는 학교법인)의 책임이고, 궁극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책임이다. 교육은 공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진지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법학교육은 필요 없다고 결정하든지, 아니면 법학교육의 경비를 부담해야 한다. 경비부담은 하지 않으면서 제대로 된 법률가를 양성해 내라고 요구하는 것은 한마디로 거지 근성이다. 이런 인식이 자리를 잡을 때에만 우리 사회가 부담하는 경비의 효율적인 사용을 위한 "구조조정"도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면 법대 교수들도 희생을 받아들여야 한다. 다른 집단들처럼 자기 희생은 하지 않고 현상 유지만 바란다면 머리에 먹물을 집어넣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사실 구조조정은 당장 시급한 문제이다. 100개에 가까운 법학과와 매년 1만에 가까운 법대 졸업생은 너무 많다. 필자는 법학과 수도 학생 정원도 절반으로 줄이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렇게 하면서 전국적으로는 인적 · 물적 설비를 현재의 규모로 유지하면 국가나 학교법인이 부담하기 어려운 투자를 하지 않더라도 정상적인 법학교육에 필요한 기본적인 조건은 갖출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국 · 공 · 사립 구분 없이 학생들의 등록금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구조를 감안하면 차후의 유지비용 증가분은 국가나 학교법인, 궁극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부담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는 우리 사회가 부담해야 한다. 교육은 공짜가 아니다.

이 문제는 법학에 한한 문제가 아니다. 고등학교 졸업생의 수보다 대학입학 정원이 더 많아진다고 하지 않는가? 고등학교 졸업생 거의 전부가 직업교육이 아니라 대학진학을 택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시급히 바로잡아야 할 병폐이다. 학과 구분 없이 학교 수도 대학생 수도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 그렇게 본다면, 법학전문대학원의 도입은, 도입 과정이 합리적으로 조직만 되면, 이런 구조조정을 적어도 법학 분야에는 도입한다는 의미는 있다.

그밖에도 법대나 법대 교수들이 해야 할 일 많다. 한 줄로 요약하면, 시대의 변화를 외면하지 말고 연구와 교육을 새로운 내용으로 채워야 한다. 우리만의 독자적인 법학을 수립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동시에 다른 나라의 법과 법학에 눈과 귀를 닫지 않을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학생들에게 시험과목뿐만 아니라, 외국어 구사능력을 포함하여 국제 무대에서 법률가로 활동하는 데 필요한 소양을 갖추도록 가르쳐야 한다.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이런 것들이 한국 법학교육의 문제점이고 그 개선책이라고 보는데, 필자와 생각이 다른 분들도 많은 모양이다.

오래 전부터 한국의 법학 교육은 문제 덩어리로 치부되어 왔다. 이런 질책은 원래 법학전문대학원 논의와 관계없이 나온 것이었다. 따라서 이런 질책을 하는 데 도입론자나 반대론자가 차이가 없다. 그러나, 도입론자들은 한국 법과대학의 문제점을 법학전문대학원이 도입되어야 하는 주요한 논거 중 하나로 들고 나왔다. 한국의 법과대학에서는 추상적인 개념 위주의 교육만 이루어지고 학생들은 그저 학설과 판례를 암기하는 공부나 하고 있어서, 법대를 졸업하고도 실무를 처리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법대생 시절부터 하도 많이 들어와서 그런지, 법대 교수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실무 중심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미국식 Law School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필자도 한국의 법과대학에 개선해야 할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꾸지람을 하도 자주 듣다보니, 필자도 "내가 학생들에게 실무가 아니라 허무를 가르치고 있는가?" 부끄럽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해서 이리저리 알아보았다. 필자 자신은 미국 Law School을 본 적이 없다. 미국이라고 해야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앵커리지 공항에 머문 1시간이 전부다. 그래서 미국 Law School에서 몇 년씩 공부하고 온 교수들에게 물어보았다. 도대체 미국 Law School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느냐고. 이 분들의 설명을 듣고 나서 필자가 내린 결론 : 우리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한국의 법과대학에서는 추상적인 개념 위주의 교육만 이루어지고 학생들은 그저 학설과 판례를 암기하는 공부나 하고 있는데, 미국 Law School에서는 실무위주의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법대 강의실을 구경이나 하고 말씀하시는 것인지 모르겠다. 자기가 절이나 고시학원에서 고시공부하던 그 시절의 법대 강의실말고 지금의 법대 강의실을 말한다. 이 분들의 은사들께서는 그렇게 가르치신 모양이다. 설사 은사들께서 그렇게 가르치셨더라도, 듣기에 따라서는 은사들을 욕되게 할 수도 있는 그런 말을 그렇게 크게 떠드는 것이 아니다. 법대 졸업생이면, 예를 들어, 공소장을 턱하니 쓸 줄 알아야 하는데, 한국 법대 교수들은 추상적인 개념만 가르쳐서 내 보낸다는 말인 모양이다. 그렇다고 "자, 오늘은 공소장을 작성해 보자. 시작!" 이렇게 시작할 수는 없다. 공소장 작성을 할 줄 아는 학생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공소장이 무엇인지 가르쳐야 하고, 그 보다 먼저 공소가 무엇이지 가르쳐야 하고, 그 보다 앞서 무슨 짓을 하면 무슨 죄를 저지른 것인지 가르쳐야 한다. 교육에는 원래 추상적인 개념을 가르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 Law School이라고 크게 다를 수 없다. 많으냐 적으냐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법대 교수들에게 사법시험 합격한 학생들을 데려다 줘 보라. "실무"를 가르치라면 못 가르칠 것 같은가? 간혹 대학에서 실무가들(주로 변호사들)에게 시간 강의를 부탁하는 수가 있다. 학생들이 실무가의 강의를 좋아할 줄 알겠지만,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필자는 이 분들이 무능하거나 법학을 잘 몰라서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강의는 변론과 다른 것이다. 그래서 강의는 따로 준비하고 연습해야 한다. 실제 준비 많이 해서 강의하는 변호사의 강의는 학생들이 좋아한다. 준비가 부족한 강의를 들은 학생들이 강사가 변호사라는 사실만으로 감동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법대 교수가 실무를 가르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준비와 연습이 필요할 뿐이다. 법학전문대학원에는 일정 비율(대법원은 20%, 변호사 단체는 100%를 요구한다고 들었다)의 실무가를 교수로 채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는데, 그 주장 자체야 문제될 것이 없다.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원 실무가 출신이어야 하는 것으로 정해져서, 필자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될 수 없는 상황이 온다고 해도 필자는 아쉬운 것이 없다. 다만, 후에 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될 실무가들은 명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 강의는 따로 준비하고 연습해야 한다. 내가 얼마나 잘난 사람인데 강의 하나 못할까봐? 이렇게 덤비다가는 큰 코 다친다.

도대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실무능력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법대 졸업생이 실무에서 사용되는 문서를 양식에 맞추어 작성하고 어디에 어떤 도장을 찍어야 하는지를 아는 따위의 능력이 없어서 불만이라는 말씀은 아닌 것 같다. 법대 졸업생들이 그런 걸 모르는 건 사실이지만, 그런 걸 꼭 가르치라면 못 가르칠 것도 없다. 그러나 법대생들에게 그런 걸 가르칠 필요는 없다. 그런 것은 고등학교 졸업 학력자를 데려다 짧은 기간만 가르치면 된다. 법대 졸업생 스스로도 졸업 후 실무에 종사하면서 단기간에 배울 수 있다. 법대 졸업생들이 갖추어 주었으면 하는 실무능력이란, 아마도, 구체적인 사례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사례의 법률적 해결책을 찾는 능력, 그리고 그 해결책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능력을 갖추라는 뜻으로 보인다.

그런 방향으로의 교육이라면 한국의 법과대학에서도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적어도 필자는 그런 능력을 길러주는 것을 교수목표로 해서 강의를 하고 있다. 설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런 방향의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미국식 Law School을 도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제도 하에서도 얼마든지 실현 가능한 교육 방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식 Law School을 도입하는 것 자체가 그런 방향의 교육을 실현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미국식 Law School을 도입하건 하지 않건, 법조실무가 선발 제도를 그런 방향의 교육을 강제할 수 있도록 개선하지 않는 한, 법대 졸업생이 그런 실무능력을 갖추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교수들이 아예 실무능력 배양을 교수목표로 하는 교육을 하지 않거나, 교수들이 그런 교육을 시도하면 학생들은 고시학원으로 달려가 버릴 것이다.

지금도 사법시험에 사례문제가 출제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분이 많이 계실 것이다. 그러나, 사례문제가 출제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법학과 3학년을 마칠 때까지는 응시자격을 제한하고, 선발인원을 대폭 늘이지 않으면 백년하청이다. 교수가 무얼 어떻게 가르치건 상관없이, 학생들은 기본3법 객관식 문제풀이에만 열중하고, 2차시험 사례문제는 고시학원 모의고사로 준비한다. 그러다 보니 사례문제도 흡사 논술식 문제 풀듯이 푼다.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카르텔 규약대로 사례문제도 흡사 논술식 문제 풀듯이 풀어 제끼면, 채점관이나 시험관리당국도 별 수가 없다. 실제 학교에서 모의고사 채점을 해보면, 예를 들어,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가 주요한 쟁점인 사례문제를 준 경우나, "원인에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를 논하라"는 문제를 준 경우나, 응시생의 99%가 똑 같은 답안지를 제출한다.

학생들에게 물어 보면 분명히 교수들이 그런 것 안 가르쳐 준다고 할 것이다. 필자도 한 때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잘 안다. 학생들이란, 유치원생부터 대학원생까지, 원래 자기가 모르는 것은 안 배웠다고 한다. 그렇게 대답하는 학생들에게 다시 물어 보라. 수업 시간에 필기한 노트를 들춰보고, 진짜 교수들이 가르쳐 주지 않았는지 확인해 볼 수 있느냐? 아마 노트가 아예 없거나(그러나 고시학원 강의 노트는 갖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자기가 한 필기의 내용을 자기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사법시험제도는 전문법조인 선발 제도일 뿐 법학교육을 육성하는 제도가 아니기 때문에, 법학교육을 부실화하는 책임이 사법시험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니며, 사법시험 과목을 중심으로 커리큘럼을 편성하고 있는 법학교육계에 책임과 문제점이 있다는 주장(서울지방변호사회, 사법개혁에 대한 우리의 견해, 2004년 7월, 2쪽)도 개진되고 있다. 이러니 절이나 고시학원에서 공부해서 개념법학만 할 줄 알고 현실감각은 무디다는 말을 듣는 것이다. 더구나 그 바로 다음 줄에서는 "법학교육을 성실히 받았는지를 요건으로 응시자격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사법시험제도를 강화(?)하는 것이 법학교육의 정상화 방안이라고 한다. 바로 앞에서 법학교육의 부실화가 법학교육계의 책임일 뿐, 사법시험제도 때문이 아니라고 하더니, 줄을 바꾸자 말자 사법시험제도를 바꾸는 것이 법학교육을 정상화하는 방안이라니, 필자의 강의를 듣는 수강생이 시험에서 이런 식의 논리를 전개한다면 그 학생은 낙제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익단체가 "제 눈의 들보"는 외면하면서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허물이나 꼬집는 것은 점잖은 태도라고 볼 수 없다. 세상의 변화는 외면한 채 우물 안에서 누리는 영업상의 특권을 수호하는 데만 골몰해 온 자신의 허물을 먼저 탓할 일이다. 따라서, "법학교육의 정상화는 법학교수진의 능력, 적절한 커리큘럼의 편성, 충실한 학사관리, 졸업 후 진로지도 등 순수한 교육적 측면에서 개선방향을 찾아내야" 한다고 하면서, "문제는 교육에 있는데 엉뚱하게 ... 법조인 선발방법에서 그 해결책을 찾으려 하는 것은 ... 불순한 동기가 숨어있는 것"(서울지방변호사회, 사법개혁에 대한 우리의 견해, 2004년 7월, 9쪽)이라는 주장은 그 옳고 그름의 떠나 무례한 말씀이다. 무슨 용기로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능력"을, 그것도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그 집단에 속하는 사람 전체의 "능력"을 평하는가?

생각해 보라. 대학입시 제도가 어떻게 되어 있건 상관하지 말고, 고등학교에서는 교육 본래의 이상을 추구하라고 요구할 수 있겠는가? 물론 소수의 영웅적인 교사가 그런 교육을 하는 경우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세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자기 자녀가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대학입시와 무관하지만 이상적인 교육이 이루어질 때 변호사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알고 싶다. 대학입시 제도가 고등학교 교육을 규정하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사법시험 제도가 대학의 법학교육을 규정한다. 소수의 영웅적인 교수들이 사법시험 준비와는 무관한, 그러나 이상적인 법학교육을 감행하면 존경을 받기는 하겠지만(?), 대세를 이루지는 못할 것이다. 자녀를 법대에 보내 놓았는데 학교에서 사법시험과는 무관한 커리큘럼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이 나라 변호사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무척 궁금하다. 사법시험 과목 중심의 커리큘럼이 문제라니, 그럼 현행 제도상의 사법시험 과목은 정상적인 법학교육을 위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과목을 모아 놓았다는 말인가? 대학의 법학과가 사법시험 과목 중심의 커리큘럼을 운영하는 것이 문제라는 주장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변호사들로부터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결국, 정상적인 법학교육이란 실무능력, 즉 구체적인 사례에 대한 법률적 해결책을 찾을 줄 알고, 그렇게 찾은 해결책을 말과 글로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을 배양하는 법학교육을 말하는 것인데, 한국의 법학교육은 법대생들에게 이런 능력을 길러주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런 비난이 법학에만 가해지는 것은 아니다. 모든 전공이 다 이런 질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공과대학이나 공과대학 교수, 공과대학 졸업생을 욕하는 걸 들어본 적 없는가? 대학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영어를 몇 년씩이나 배우고도 미국 사람 만나면 한 마디도 못한다"는 말을 필자는 중학생 시절부터 수도 없이 들었다. 일차적인 책임은 교사나 교수들이 져야한다. 그러나 국가나 사회도 교육을 위해 할 일을 다하고, 교육을 위해 필요한 투자를 다하고, 정상적인 교육을 위해 필요한 환경을 제대로 갖추어 주고, 그리고 나서 학교나 선생을 비난하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그러나 미국식 Law School을 도입하지 않는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아니며, 미국식 Law School을 도입한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8. 토론 과정의 문제점 - 대학과 교수의 소외

법학전문대학원에 관한 최근의 논의에서, 또 하나 큰 문제는, 전국의 법대 교수들 중 대다수는 토론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저 언론 보도나 풍문으로 돌아가는 분위기를 짐작하고 바라만 보고 있다. 떠들어 보아야 결정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분들에게는 들리지도 않을 텐데, 혹은 들리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에 법학전문대학원 제도의 도입 자체에 대해서는 아예 말이 없다.

토론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아직 아무 것도 결정된 것 없다. 결정되면 그 때 반대하라"고 하지만, 언론에는 변호사 단체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법조실무가 선발인원을 지금 수준에서 제한하는 방안이 떠돌아다니더니, 결국 대법원의 안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법조실무가 선발 제도를 개선하지 않고는 법률가 양성 제도(즉, 법학교육)는 개선되지 않을 것이고, 법조실무가 선발 인원을 대폭 늘이지 않고는 법학전문대학원 아니라 무엇을 도입하더라도 법조실무가 선발 제도의 개선은 아니다. 선발 인원은 늘이지 않으면서 법학전문대학원을 도입한다는 것은 얻는 것도 없으면서 혼란만 조성하는 것이다. 벌써 그 혼란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전국 99개 법학과의 10%에도 못 미치는 극히 소수만 법학전문대학원을 유치할 수 있다는 풍문 때문에, 유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믿는 학교는 그 학교대로,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믿는 대학은 또 그 학교대로 벌써부터 미증유의 혼란에 빠져 있다. 그나마 가능성(1% ~ 99%)이 있을 것 같은 학교에서는 인원이나 시설을 확충해야 한다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고,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 지레 짐작한 학교에서는 "이제 간판을 바꾸어 달아야 하는 것 아닌가?" 자조적인 물음을 주고받고 있을 뿐, 이 어이없는 상황에 대해서는 항의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인원이나 시설의 확충을 서두르고 있는 학교들도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확충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는 처지("아직 아무 것도 결정된 것 없다. 결정되면 그 때 반대하라")이다 보니 그저 허공에 대고 주먹질하는 꼴이다. 이런 걸 두고 착하다고 해야 하나? 어리석다고 해야 하나?

법학전문대학원 유치를 위해 밑도 끝도 없이 동분서주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흡사 카지노 운영권을 따내기 위해 정신 없이 돌아가는 호텔을 보고 있는 것 같다. 기어이 선발인원을 늘이지 못하겠으면 차라리 법학전문대학원 논의를 접고 이대로 두기 바란다. 그리고 "학교"를 이 꼴로 웃음거리로 만든 사람들에게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9. 법학전문대학원은 도입, 총 정원은 제한?

법학전문대학원은 도입하되 법조실무가 선발 인원을 현 수준에서 동결할 수 있도록 총 정원을 제한하자는 대법원의 의견을 따라도 문제가 없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그렇지 않다.

설사 법조실무가 선발 인원을 현재의 사법시험 합격자 수와 같이 매년 1000명에서 동결하는 것이 옳다고 하더라도, 법학전문대학원 총 입학정원을 대법원이 생각하는 것처럼 1200명 ~ 1300 명으로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 2배인 2000명으로 하는 것이 옳다. 입학정원이 1200명 ~ 1300명인데 1000명을 법조실무가으로 선발한다면, 중도 포기하는 인원을 감안할 때, 거의 전원이 졸업을 한다는 말이다. 이런 조건에서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질 수가 없다. 선생이 시키는대로 하지 않아도 어차피 거의 다 졸업할 상황이면 선생 말을 귀담아 들을 학생은 없다. 물론 지금의 사법시험처럼 선생 말 아무리 잘 들어도 그 중 극소수만 시험에 합격하는 경우에도 선생 말을 귀담아 들을 이유가 없다. 이게 학생이다. 변호사 단체가 생각하는 것처럼, 선생을 모두 판사 · 검사 · 변호사로 채우면 학생들이 감동해서 선생 말 잘 들을 것으로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꿈 같은 이야기다. 사법연수원생들은 사법연수원 교수가 주는 점수가 자신의 장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정이 다른 것이다. 그러나 법학전문대학원생에게는 어차피 또 보아야 하는 변호사시험 점수(그리고 합격 후에 연수원에서 받는 점수)가 중요하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주는 점수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변호사 단체는 대학이 "충실한 학사관리"를 하지 않아서 문제인 듯이 말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법학전문대학원생이 졸업을 하고 자격시험을 통과하는 상황에서 충실한 학사관리는 애당초 불가능하다.

법학전문대학원에서도 경쟁이 없으면 일을 망치지만, 변호사 업계에서도 경쟁이 없으면, 그것도 경쟁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려고 하면 일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필자의 생각으로, 무엇보다도, 법조실무가 선발 인원을 특정한 숫자로 정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려야 한다. 계획경제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런 선입관을 버리고, 일정 수준 이상의 법학교육을 할 능력이 있는 학교는 모두 법학전문대학원을 설치하도록 허용해야 한다. 그 기준은 법원 · 변호사 단체 · 법과대학 연합체 3자가 협의해서 정하면 된다. 그리고 그 3자가 해마다 전국의 법학전문대학원을 평가해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학교는 퇴장시켜야 한다. 법조실무가 선발도 마찬가지다. 정규 교육기관에서 법학교육을 마치고, 일정한 수준 이상의 법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은 인원에 관계없이 모두 합격시켜야 한다. 어느 정도 수준이면 합격시켜줄 것인지, 그 기준은 법원 · 변호사 단체 · 법과대학 연합체 3자가 협의해서 정하면 된다. 변호사 면허는 있지만 무능해서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은 국가나 사회가 걱정해 줄 필요가 없다. 알아서 벌어먹고 살아야 한다. 국가가 발급한 모든 종류의 면허증 소지자들을 모두 국가가 먹여 살릴 참인가? 왜들 그렇게 힘들게 사는가?

필자의 이런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가능한 한 많은 수의 법조실무가을 선발하도록 하고, 거기에 맞추어 법학전문대학원 총 입학정원도 그 1.5배 ~ 2배로 정해야 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다른 수가 없다. 그것도 못하겠거든 지금 이대로 두라. 그것이 훨씬 낫다.

차라리 지금이 더 낫다고 하는 이유는, 법학전문대학원을 극소수로 제한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또 다른 폐단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 법학의 연구 기반은 폐허로 바뀐다. 생각해 보라. 현재 전국의 100개 가까운 법학과에 1000명에 가까운 수의 교수들이 재직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이야기되고 있는 것처럼 법학전문대학원 총 입학정원을 1200명 ~ 1300명으로 하면 총 정원은 3600명 ~ 3900명, 교수 1인당 학생 수를 15명으로 한다니까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모두 합해 봐야 240명 ~ 260명, 교수 1인당 학생 수를 12명으로 잡더라도 300명 ~ 325명에 불과하다. 법학전문대학원을 유치하지 못해서 학부 법학과로 남은 학교의 경우 사실상 존립하기 어려울 것이다. 법조실무가를 양성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법학과가 어떻게 존속할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대학원의 기능마저 마비되어서 학문 후속세대의 양성 기능도 상실할 것이다. 현재 재직 중인 교수가 일자리를 잃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연구인력의 규모가 엄청나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연구인력의 수를 이렇게 큰 규모로 축소시키고도 한국 법조의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다.

절이나 고시원에서 공부하고 고시학원에서 시험준비했던 분들 중에서 법학에 무슨 대학이 필요하고 연구가 필요하냐고 하실 분들도 계실 것이다. 절 있고, 고시원 있고, 학원강사 있으면 되지 무슨 얼어죽을 연구냐 싶겠지만, 결국 누가 쓴 무슨 책으로 공부했는지 생각해 보라. 교과서 쓴 교수라 해 봐야 한 주먹 밖에 안 되는데 무슨 놈의 교수가 1000명씩이나 필요하냐 싶겠지만, 교과서 쓴 교수도 혼자 쓴 것이 아니다. 수많은 연구자들이 오래 동안 축적해 온 연구성과를 검토하고 정리해서 쓰는 것이다. 그런 바탕이 없는 상태에서 교과서 쓸려면 외국 책 베끼는 수밖에 없다. 열심히 기도해서 계시라도 받아서 책 쓰는 줄 아는가?

법학이 발전하지 않아도 나하고는 상관없다 싶은가? 왜 옛날에 중국 사람들이 자기네 달력을 강요했는지 아는가? 왜 독일 사람들이 동구권에 자기네 법체계를 이식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했는지 아는가? 산업표준을 강요하고 이식한 것이다. 한국 교수들이 듣고 있는데도 독일 교수들끼리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자기들이 만들어 준 것("한국에 와서 세미나며 심포지움이며 해 주면서")이라고 예사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건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다. 돈의 문제다.

세상은 변했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살던 것처럼 살 것인가, 아니면 변화한 세상에 맞추어 우리도 변할 것인가,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왔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변화한 시대가 가혹하게 벌할 것이다. 많은 사람이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2004년 9월 10일
부산대학교 법과대학
부교수 안 원 하